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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기자명 최원형

지속가능한 삶으로 선회해보는 작은 시도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부엌 창 너머를 잠시 내다보고 있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이미 어둠은 온전히 내려앉아 사위가 깜깜하다. 겨울이라 일몰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게 실감이 났다.문득 내 시야에 반짝이는 불빛이 들어왔다. 앞 동 어느 집 거실에 마련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색색의 전구가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느덧 연말이다. 그러고 보니 백화점이며 쇼핑센터 외벽이 연말 분위기를 내는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던 게 떠올랐다. 며칠 전 길을 가다가 한 가게에서 점원이 밖으로 나와 호객을 하며 들고 있던 손 팻말이 떠올랐다. 영어로 “블랙 프라이데이”라 적혀 있었다. 쇼핑업계를 중심으로 이 말은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 빠르게 퍼졌다. 그러니 이제 영어로 써진 팻말까지 등장하는 게 아닐지. 블랙 프라이데이는 연중 쇼핑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여서 적자가 흑자로 바뀌는 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양에서 시작된 이 말은 11월 추수감사제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시즌까지가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다. 한해를 보내는 연말 분위기에 편승해서 기업들이 소비를 부추겨 매출을 올리려 안간힘을 쓰는 시기이다. 소비사회에서 의당 나왔음직한 판매 전략이다.

서양에서 시작된 ‘블랙프라이데이’
소비 부추겨 매출 올리려는 의도
이에 반대해 생겨난 ‘무소비의 날’
24시간 소비 노출된 환경선 어려워

그렇지만 소비가 언제까지고 가능할 거라는 데에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정해진 날짜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추수감사제가 끝날 즈음인 11월 마지막 주쯤에 들어있다. 어느 해 부턴가 한 환경단체에서 이 날을 11월 26일로 정하고 퍼뜨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이 있는 줄 모른다. 올해는 나도 하루를 정해서 아무것도 사지 않는 일을 실천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을 나섰다가 다시 귀가하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되니까 하루쯤이야 했다. 그런데 사실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요새는 인터넷 쇼핑, 홈쇼핑이라는 대단히 편리한 구매시스템이 있어서 24시간 쇼핑이 가능하다. 물론 나는 이런 쇼핑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만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된다. 바깥에서 점심시간이 되었다. 뭔가를 사 먹어야 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날인데’, 라고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또 다른 목소리가 ‘이건 끼닌데?’ ‘그러니까 끼니는 예외지’ 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래서 밥을 사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커피가 또 생각났다. 커피는 굳은 의지로 건너 뛸 수 있었다. 오후에 사람들을 만나 회의를 하게 됐다. 카페에서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음료를 주문해야 했다. 결국 그날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될 수 없었다. 그날 집에 와 곰곰 생각해봤다.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된다면 이 날은 지킬 수 없는 걸까? 아니다.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될 경우 미리 도시락을 챙겨 가면 가능했다. 회의를 하게 된다면 음료도 미리 챙겨 가면 된다. 회의에 만날 사람들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각자 마실 것들을 준비해오도록 하면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는 하루를 보내려면 소풍 가듯 가방을 챙겨 가면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준비를 너무나 불편하고 번거롭고 귀찮은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또 드는 생각이 물건이 흔하기 전에 우리의 삶은 대략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옛이야기를 봐도 나무꾼은 나무를 하러 가면서 도시락을 챙겨갔다. 누구든 길을 떠나기 위해 무언가 끼니가 될 만한 것들을 챙겨 봇짐 속에 넣어가는 일은 당연했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삶이 꽤 오랜 시간 있어왔다. 물건이 흔해지고 언제 어디서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오늘과 같은 삶을 인류가 누리기 시작한 지는 인류 역사 전체로 놓고 보면 정말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길들여진 것은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편리함이다. 길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주체가 되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해오던 습관에 그대로 나를 맡겨버리는 것 아닌가? 단순히 맡기는 정도가 아니라  점점 더 그 익숙한 정도가 강화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길들여진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괴롭고 불안하게 된다. 그러니 길들여진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편리하고 풍족한 것이 언제까지고 가능하지 않다는 건 애써 외면하려해도 현실이다. 그러니 길들여지고 익숙했던 것들과 이별하고 좀 더 낯설지만 좀 더 번거롭지만 지속가능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보는 시도, 어떨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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