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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찰의 용 ② 용왕의 불법수호와 용녀의 성불

기자명 정진희

용왕은 불법 수호하고 용왕 딸은 부처되다

▲ 월정사 용왕도, 조선(1755년), 모시에 채색, 세로 100cm, 가로 84.5cm. 사진 ‘한국의 불화’.

서역 지방의 승려로 중국에 와서 불경을 번역하였던 구마라습이 쓴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을 보면 바다의 용왕이 부처님의 법을 수호했다는 유명한 설화가 나온다. 말법(末法)의 세상이 되어 한 사람도 불법을 우러러 받드는 이가 없게 되면 불상은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경전들은 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래서 기약 없는 날들을 지내며 불법이 다시 펼쳐질 세상을 기원하며 용왕은 용궁에 숨겨진 불경을 지키고 있었다. 용수보살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600~700년 이후에 태어난 인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지혜가 남달라 출가한지 90일 만에 삼장(三藏)의 깊은 뜻을 통달하였다. 대룡(大龍) 보살은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 안하무인으로 살던 용수보살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를 이끌고 바다 속 용궁으로 향했다. 대룡보살이 이끈 용궁의 칠보로 장식이 된 창고 속에는 ‘화엄경’을 비롯한 대승의 경전들이 가득하였다. 용수는 석 달 동안 용궁에 있던 속 대승경전을 공부하여 그 이치를 모두 깨달았고 그 가운데 몇 권을 골라 뭍으로 가지고 나와 다시 불법을 세상에 널리 펼쳤다. 고로 우리가 지금 대승의 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은 모두 용왕이 부처님의 법을 용궁 속에 고이고이 모셨던 공덕 그 덕택이다.

말법시대에 모습을 감춘 불법
용왕, 용궁에서 수호하고 지켜
‘대승의 불법’을 후대에 전해
용녀, 문수보살의 설법 경청
어린 여성의 몸으로 성불해

‘화엄경’에는 10대 바라밀을 상징하는 10명의 용왕이 나오고 ‘법화경’에는 각각 독특한 특성을 가진 8명의 용왕이 소개되어 있다. ‘법화경’의 8대 용왕은 호법용신의 대표자인 난타(難陀). 난타용왕의 형제인 발난타(跋難陀), 비를 기원하는 청우법의 본존인 사가라(娑伽羅), 머리가 아홉 달린 화수길(和修吉), 화수길의 동료로 화가 나서 바라보기만 해도 짐승과 사람이 죽어버린다는 덕차가(德叉迦), 설산 위에 살며 덕이 가장 높은 아나발달다(阿那跋達多), 큰 몸과 큰 힘, 큰 뜻을 의미하는 모든 것이 큰 마나사(摩那斯), 푸른 연못에 사는 우발라(憂鉢羅) 용왕 등이다. 이 가운데 사가라 용왕은 큰 바다의 용왕으로 비를 기원하는 기우신앙에서 본존으로 모셔진다. ‘월인석보’를 보면 “일곱 산 밖에 짠물의 바다가 있는데 사가라 용왕이 우두머리가 되어 있나니 다른 용이 다 그 신하이다”라 하여 사가라가 용중의 왕으로 묘사되어 있다.

▲ 국립박물관 소장 신중도 중 용왕의 모습, 1750년,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용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신중도의 구성원으로 빠지지 않고, 더불어 물과 관련된 절대적인 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에서는 용왕전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용왕도라는 단독 불화를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보통 용왕은 바다의 수호신이기에 바다 일을 하는 어부들과 관련이 있지만 드물게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신으로도 모셔지기도 한다.

▲ 야차의 등에 업힌 인물상, 일본 대덕사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 부분.

월정사 용왕도는 용왕의 왕인 사가라를 그린 것이다. 불화의 용왕은 인간과 같은 형상으로 제왕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월정사의 용왕도와 같이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한 독특한 형상으로 그려진 작품도 있다. 화면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이 두 손에 꼭 쥔 여의보주와 등 뒤로 용트림 하며 오르는 작은 용은 이 분이 바로 용왕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모티프이다. 돼지 코를 하고 있는 용과 같이 돼지 코 얼굴에 그려진 수염은 마치 주렁주렁 하얀 고드름과 같다. 연재물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에서 데비존스 선장의 모습을 우리나라 불화의 용왕님에서 얻어 갔는지, 어딘지 모르게 이 둘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든다. 머리 위 포효하는 용의 당당함에 비해 여의보주를 쥔 두 손은 너무 공손해 보여 어딘가 해학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에는 지혜가 남다른 사가라 용왕의 딸이 8세 때 용궁에서 문수보살이 설하는 ‘묘법연화경’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이야기가 나온다. 용왕의 딸은 여자의 몸은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리자와 그 사실을 당연시 하였던 그 자리에 모였던 대중들에게 보란 듯이 부처님의 신력을 입어 홀연히 남자의 몸으로 바뀌어 보살행을 갖춘다. 그리고 곧바로 남방무구세계로 가 보배 연꽃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상을 갖춘 뒤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위해 묘법을 연설하며 부처가 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여성이 부처가 되었다는 이 놀라운 설화를 우리나라 사찰에서 그림으로 혹은 조각으로 만들어 소장하고 있는 예를 필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불화에서 성인 여성이 용녀로 그려진 작품은 고려 미륵사경변상도를 비롯하여 전라도 미황사 괘불 좌우 협시한 용왕과 용녀의 상, 수월관음도에서 공양자로 표현된 용왕과 용녀 등 조선시대 작품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졌을 사가라 용왕의 딸을 다룬 작품은 없었다.

▲ 선녀용왕도(장곡천등백 작 실정말기 長谷川等伯 作 室町末期 1564년), 비단에 채색. 세로 35.3cm, 가로 16.3cm. 일본 이시카와현 칠미미술관(七尾美術館).

일본 대덕사(大德寺)에 소장된 고려 수월관음도의 아래부분에는 관음을 향해 한 쪽 방향으로 줄지어 가는 공양 인물군상이 있다. 선두에 선 용왕을 비롯하여 용왕의 부인 등 용궁의 인물들로 구성된 공양인물군상 끝에 야차의 등에 업혀 보주를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용녀가 어린 남자아이로 변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학계의 추정도 있다. 한 화면에 ‘화엄경’의 선재동자와 ‘법화경’의 용녀가 함께 그려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허구적인 추측은 아니지 싶다. 일본의 유명한 화가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가 그린 불화 가운데는 사가라 용왕의 어린 딸을 그린 선녀용왕도가 있다. 그림의 앳된 소녀가 용왕의 딸임을 나타내기 위해 소녀의 뒤로는 손에 붉은 여의주를 꽉 쥐고 용트림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푸른 용 한 마리를 그렸다. 소녀의 오른손에 든 검은 문수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검으로 보이고 왼손에 들어 올린 보주는 석가모니에게 바쳤다던 자신의 성불이 빠름을 증명했던 보배구슬을 의미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사가라 용왕의 딸을 그린 작품이 존재하였다면 아마 일본 화가가 그린 이 작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듯싶다.

‘법화경’에서 지적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도 한량없는 겁 동안 힘든 수행을 통해 성불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린 소녀인 용녀의 성불을 못 믿겠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용녀의 성불은 사실이었고 그것도 무량겁의 세월이 아닌 순간에 이루어진 성과였다.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용왕의 딸이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겠지만 이 이야기를 달리 보면 어쩌면 여성은 성불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속성으로 성불할 수 있는 법기(法器)일 수도 있겠구나싶다. 어찌됐던 사가라 용왕의 딸 이야기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선녀인(善女人)들에게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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