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6. 고은의 ‘모기’

기자명 김형중

모기에 물린 현실은 살아 있는 증거
생존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 읊은 시

모기한테 물렸다
고맙구나
내가 살아 있구나
긁적긁적

4·3·4조 운율에 22자 짧은 시
생명의 존엄을 통쾌하게 표현
‘긁적긁적’은 살아 있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쓴 고수의 마무리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가해를 한 동물 1위가 모기임을 발표하였다. 매년 100만 명씩 모기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다. 모기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의 피를 빨아 먹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시킨다. 모기를 박멸할 근본적인 방법이 없다. 특히나 모기에 물리면 모기의 타액이 몸속에 들어와 가려움을 유발시킨다.

모기는 특히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일본뇌염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다. 모기가 우는 왱왱 소리를 생각만 해도 온 몸이 가렵다. 아무리 생명이 귀하고 존엄하다해도 모기는 백해무익하고 단잠을 깨우는 얄미운 녀석이다. 부처님께서 생명이 있는 모든 무리를 죽이지 말라고 불살생계를 설하셨지만, 모기는 아무리 죽여도 살생죄를 물을 수 없는 인류 공공의 적이다. WHO는 모기를 잡아 죽이라는 모기 박멸령을 내렸다.

시인은 “모기한테 물렸다/ 고맙구나/ 내가 살아 있구나” 하였다. 모기에 물렸다는 현실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 즉 생존에 대하여 감사함을 읊고 있다. 45억 년 지구의 수명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이 순간 억겁의 세월 속에서 볼 때 살아있는 생명체는 기적이다.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고 모두가 부처의 화현이다. ‘화엄경’에서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셋은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하였다. 생명체가 있는 중생이 부처다.

고은(1933~현재)의 100권이 넘는 시집 가운데 선시집 ‘뭐냐’가 있다. 원래 시집 이름은 ‘선시’이다. ‘모기’도 거기에 수록되어 있다. 모두가 한결같이 아주 짧은 시이고, 시상이나 시의 형식이 파격적이고 거침이 없다. 고은이 하룻밤에 읊은 시집이다. 40년 전 시인의 친구인 동국대 교수 김운학 스님이 고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기억이 난다. “고은이는 시에 미친 천재야. 술 한 말을 지고 다락방에 들어가 팬티만 입고 며칠 밤을 새며 씨름하다 시집 원고 한 뭉치를 들고 나와…”

‘모기’는 일본의 17자시 ‘하이쿠’를 닮았다. 하이쿠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시불(詩佛)이 일본 불교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용기 있는 시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이 일제강점기 때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 타고르의 ‘키탄잘리’의 시집을 읽고는 나도 이 정도의 시를 쓸 수 있겠다고 마음을 먹고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여름 한 철을 지내며 시집 ‘님의 침묵’을 창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만해는 이때까지 시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무명이었다.

하이쿠의 시인 고바야시 이싸는 모기를 주제로 다음과 같은 두 편의 시를 썼다. “내 귓가의 모기는 내가 귀머거리인 줄 아는 걸까?”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이런 시를 쓰려면 나이가 들어 미움과 증오가 모두 사라진 마음의 경계라야 가능할 것이다. 젊은 사람은 모기에 물려서 고맙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죽음의 언덕을 넘는 사람이라면 아침이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에 대한 자각이 순간순간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모기’는 4·3·4조의 운율을 지닌 22자의 짧은 시다. 생존의 기쁨과 생명의 존엄에 대해 통쾌하게 읊고 있다. ‘긁적긁적’은 능청맞게 살아있는 현재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고수의 마무리이다. 모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필자가 지난 여름에 고은의 시 ‘모기’를 읽고 한 생각이 일어나 ‘모기 보살’이란 시를 썼다.

“인간이 죽는 원인 중/ 모기에 물려 죽는 것이 1위라네/ 아무리 원수를 사랑하라 했어도/ 너는 인류의 원수 중에 원수로세/ 내가 너만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곧바로 관세음보살일세”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