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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얻을 수 없는 마음

마음은 실체가 없으므로 결코 잡을 수 없다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마음은 계속 흐르는 연기체
중간만 떼어내 잡을 수 없어
세상 모든 물이 연결돼 있듯
마음 또한 모든 것과 이어져

마음은 연기체(緣起體)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연속체이다. 마음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타인과 타생명과 환경과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바뀌는 존재이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딱 잘라서 ‘이게 내 마음이다’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은 많은 부분이 타인으로부터 온다. 이미 죽은 사람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책을 통해, 대화를 통해, 고인(故人)의 생각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내 안에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한다. 다른 곳(책과 타인의 마음)에 살던 고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도 들어와 사는 것이다. 그 마음이 내 몸을 움직여 어떤 행동을 하게 하면, 사실은 그 행동은 내가 아니라 고인이 한 것이다. 내 마음은 내가 다 만든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 (기본 소프트웨어로) 가지고 나온 것도 있고, 사회로부터 유입된 것도 있다. 강에 지류가 흘러들 듯 유입된다. 비가 오듯 눈이 오듯 흘러든다.

세상의 물이란 물은 다 연결되어 있다. 사해와 바이칼 호수 등 내해는 고립되어 있는 듯 보여도, 사실은 다른 물들과 다 연결되어 있다. 물은 증발하여 수증기가 된 다음 바람에 실려 서로 섞이며 온 지구를 돌다 힘을 잃고 차가운 공기를 만나 응결하여 비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곳은 정해져있지 않다. 메콩델타, 갠지스 강, 사하라 사막, 세렝게티 초원이 될 수도 태평양 한가운데가 될 수도 있다. 봄비로 머리 위에 떨어져, 머리카락과 이마를 타고 눈으로 흘러들어가, 우리 몸속에 정착한 후 한동안 머물 수도 있다.

설사 비가 되어 떨어지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하늘 아래로 귀환이 가능하다. 밤을 새워 공중에 머물다가 차가운 새벽 풀 위에 결로할 수 있다. 이 이슬방울을 마신 쇠똥구리가 멧돼지에게 먹히고, 그 덕에 힘이 난 멧돼지가 조심성 없이 설쳐대다 사자에게 발각돼 잡아먹히면, 멧돼지의 피가 된 이슬은 사자의 노란 오줌으로 배출된다. 건기의 뜨거운 태양이 오줌을 증발시키면, 이슬은 바람에 실려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몸을 잃은 쇠똥구리와 멧돼지의 영혼은 돌아가 안식할 곳이 없다.

땅속의 물이건, 땅위의 물이건, 하늘의 물이건, 생물체 내의 물이건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지상의 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지상의 우리 마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식·정보·사상·상식·종교·문화·음악·미술·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마음은 ‘고립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므로 결코 잡을 수 없다.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잡을 수 없다. 지나간 마음도, 지금 마음도, 앞으로 마음도 잡을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어제·오늘·내일로 분리된 불변의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무지개에서 붉은 부분만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지개의 색은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저기까지가 붉은 색이라는, 레이저 칼로 자른 듯, 명확한 경계가 없다. 마음도 그렇다.

시간이 개구리 알을 잡은 손을 펴니 올챙이가 꿈틀거린다. 시간이 올챙이를 잡은 손을 펴니 개구리가 폴짝 뛴다. 시간이 아메바를 잡은 손을 펴니 인간이 뛰어나와 감히 질문한다. ‘시간, 너는 대체 어떤 물건이냐?’ 자연은 마술이다. 끝없이 모습을 바꾼다. 벌겋게 뜬 우리 두 눈앞에서. 어리석은 관중인 우리는 그 모든 변화의 배후에 이 놀라운 변화를 만드는 영원한 마술사가 있는 걸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마술사는 찾을 수 없다. 우리 마음도 그렇다. 심여화공(心如畵工)이지만 그 화공은 상변(常變)하는 연기체(緣起體)이다. 그래서 잡을 수 없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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