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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재난세대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11.28 17:05
  • 수정 2017.11.28 17:12
  • 댓글 0

고생길에 존재하는 특별한 장점
작은 것도 만족감 느낄 수 있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참 이상한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지만 심리적으로 납득이 안되죠. 왜 굳이 고생을 사서까지 해야 합니까? 청춘은 아파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안 그래도 아픈 세상인데 고생길로 청춘들을 밀어 넣어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이미 충분히 힘듭니다. 사실상 특별재난 세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평생을 부모에게 이끌려 억지로 배움을 이어왔는데 사회에 진입하는 장벽이 지나지게 높아져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것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아닐까요?

이미 충분히 고생하는 청년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삶이란 피할 수 없는 고생길이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고생길에 순응할 수 있는 몇 가지 논리라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힘이 커진다

고생길에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길만의 특별한 장점들이 존재합니다.
고생을 하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는 힘이 커집니다. 미얀마 국제명상센터에서 수행을 하면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조건이나 상황은 상당히 열 약하죠. 날씨는 무지막지하게 덥고, 음식은 정말 입에 안 맞습니다. 또한 머무는 곳도 만만치 않죠.

작년 겨울 명상센터에 도착해서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쪽방에는 모기, 파리, 거미 등 각종 벌레들이 잔뜩 있더군요. 방을 청소하다 하다 안돼서 그냥 모기장을 치고, 거미들과는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방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수많은 거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8kg이 빠졌다는 것은 객관적인 상황의 열악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언급했던 것처럼 이 고생길은 제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으로 귀국한 순간 평범한 모든 것들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더군요. 조금 냉랭한 공기도 감사하고, 아침에 먹는 조미료 없는 누룽지가 너무 감사합니다. 거미 없는 방, 귀한 믹스 커피 한잔, 빠른 인터넷... 모든 게 만족스러웠습니다.

고생을 공유한 관계의 단단함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를 맺어 봤습니다. 경험상 이 중 가장 단단한 유형의 인간관계는 고생길을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출가 전 도보 무전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들, 해인사에서 행자시절을 함께 했던 도반들, 군종장교 훈련을 함께 받았던 동기들...

고생길을 걷다 보면 주기적으로 심리적 한계가 다가옵니다. 멈추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고생길을 함께 걷는 이들의 작은 도움들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마다 귀신 같이 알고 도움을 주는데 혼자서 도망갈 수 없죠. 고생길을 함께 한 이들은 넘어진 나를 일으켜준 이들이기에 그 끈끈한 우정은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 원빈 스님
사람들이 이왕이면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고생길을 피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시대가 선사하는 피할 수 없는 고생길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들이 좀 더 멋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고생길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선물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고생길을 걸어보시면 이보다 훨씬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굳이 자발적으로 고생길로 보물을 찾으러 갈 필요는 없지만, 만약 피할 수 없다면 고생길 위 보물들을 기억하며 적극적으로 즐겁게 걸었으면 합니다. 억지로 끌려다니는 모습? 별로 멋없잖아요. 그렇죠?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cckensin@hanmail.net
 


[1417호 / 2017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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