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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정유년 동안거 결제 법어

  • 교계
  • 입력 2017.12.01 10:39
  • 수정 2017.12.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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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는 우물을 쳐다보고 또 우물은 나귀를 쳐다보네.”

 

조산본적(曹山本寂)선사께서 덕(德)상좌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法身)은 허공과 같고 사물에 응(應)하여 형상을 나타냄은 마치 물에 비치는 달과 같다. 어떻게 해야 그 응하는 도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귀가 우물을 쳐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열 가운데 여덟만 말했을 뿐이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물이 나귀를 쳐다보는 것과 같다.”

우물을 보는 나귀도 무심(無心)하지만 나귀를 보는 우물은 더 무심합니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결제가 무엇입니까? 아(我)와 타(他)가 사라지고 시(是)와 비(非)가 사라지고 내(內)와 외(外)가 사라지고 상(上)과 하(下)가 사라져 나귀가 우물을 쳐다보는 것처럼 우물이 나귀를 쳐다보는 것처럼 백일무심(百日無心)의 정진기간입니다. 하지만 그 백일무심이 천일무심이 되고 천일무심이 만일무심이 되고 만일무심이 나귀해(驢年)가 올 때까지 항상 여일(如一)할 때만이 제대로 된 결제입니다.

무심의 경지를 얻겠다고 하면서 나귀의 앞뒤만 따라 다니는 것은 주인의 시중을 드는 종(從)의 행동일 뿐입니다. 남을 따라할 뿐 자신만의 견처(見處)나 활발발(活潑潑)한 기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남을 따라 다니는 종의 모습을 오인하여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일입니다.
결국 죽어서도 나귀의 배에서 태어나는 축생의 과보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오조법연(五祖法演)선사는 부처와 조사의 도를 묻는 납자에게 “나귀 똥은 말똥과 같다.”고 대답합니다. 나귀 똥은 가치가 없고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귀 똥을 어떤 분별로도 접근하지 못하는 화두에 비유했습니다.
조주선사에게 문원(文遠)사미는 “나귀 똥 속에서 안거를 지내겠다”고 했습니다. 결제에는 사미(니)와 비구(니)가 따로 없습니다.

조산본적 선사는 ‘어떤 것이 사문(沙門)의 행리(行李)냐?’고 묻는 납자에게 “머리에 뿔을 이고 몸에는 털을 입었다”고 대답합니다. 또 공안집인 종감법림(宗鑑法林)에서 ‘승보(僧寶)란 나귀 뺨에 말(馬)얼굴’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혁범성성(革凡成聖)을 강조한 것입니다.
범부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승보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불전(佛殿)의 아름다운 32상(相)도 알고 보면 처음에는 나귀 뺨에 말의 얼굴을 가진 중생이었습니다.

본적선사께서 덕상좌에게 일러준 ‘노새가 우물을 쳐다보고 우물이 노새를 쳐다본다’는 그 도리 제대로 알려면 그저 화두를 들고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결제대중은 자기의 나귀다리(驢脚)를 꽉 묶어두고서 현사(玄沙)스님처럼 산마루를 넘지도 말고 보수(保壽)스님처럼 강을 건너지도 말아야 합니다. 혼침이라는 강물과 도거(掉擧)라는 산을 오로지 화두로서 이겨내며 정진하고 또 정진해서 화두(話頭)를 타파(打破)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 됩니다.

죽영소계 진부동 竹影掃階 塵不動 이요.
월륜천해 수무흔 月輪穿海 水無痕 이로다.
대그림자 비질해도 섬돌먼지 안 쓸리고,
둥근 달빛 바닷물 꿰뚫어도 물에는 자국 없네.

해인총림방장 벽산원각
海印叢林方丈 碧山源覺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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