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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여성차별 언제까지 계속될 건가

기자명 이병두

그동안 나라 안과 밖의 불교계에서 바뀌지 않고 있는 ‘비구-비구니 차별’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글을 쓰고, 이 문제와 관련된 외국 칼럼과 소식을 번역·소개한 것이 20여편 가까이 된다. 이웃 종교계에서는 그 차별이 불교보다 더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이것이 “불교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요 종교계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 판단하고 그쪽 매체에도 글을 올려 각성·분발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지난해(2016) 3월 말 가톨릭의 인터넷 매체인 ‘가톨릭프레스’에 게재한 칼럼(‘여성 수도자들의 깨침이 필요하다 -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의 경우, 가톨릭 여성 수도자인 수녀들을 향해서 쓰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실상 불교의 비구니와 개신교의 여성 목회자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책을 읽다가 106년 전인 1911년 일본의 여류 시인 요사노 아키코가 쓴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는 짧은 시를 대하는 순간, 이것이 우리나라 주요 종교계의 여성 수행자와 성직자들을 위해 쓴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20세기 초반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나라들에서 남녀 간의 관계를 지진처럼 뒤흔들고 있는 변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 사람들은 내 말을 안 믿을지도 모르지만/ 산은 그저 잠시 잠을 잤을 뿐이다. 고대에는/ 모든 산들이 움직였다./ 불꽃과 함께 춤을 추면서,/ 당신들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 이건 믿어야 한다./ 잠들었던 여자들이 모두,/ 깨어나 움직이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잠들었던 여자들이 모두,/ 깨어나 움직이고 있다’에서 ‘여자들’ 대신에 ‘비구니·수녀·여성 목회자들’을 바꿔도 메시지가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게 되었을 때, ‘새터데이 리뷰’의 편집자는 이것이 반역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 남성들이 영국을 수호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십만 명씩 죽어가고 있을 때” 의회가 “영국 정부를 여자들에게 넘겨주었다. … 용기와 고생과 죽음이 이처럼 푸대접받은 적은 없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을 터인데, 이런 주장이 여성 수도자들에게 평등권을 주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티는 주요 종교계의 남성 수행자·성직자들의 태도·심정과 똑같지 않았을까.

요사노 아키코가 “산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큰 목소리로 외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그런데 이 땅의 여성 수행자와 성직자들은 스스로 포기하고 안개처럼 사라질 것인가. 이제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산이 깨어나 크게 흔들어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예루살렘 문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여기에 견고하게 높은 장벽과 그 장벽에 부딪혀 깨진 계란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그 계란 편에 설 것입니다. … 우리는 모두 국적·인종·종교를 초월한 개개인이며, 체제라는 이 높은 장벽과 맞서고 있는 하나하나의 계란입니다. 언뜻 보면 우리에겐 승리할 희망이 조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장벽은 저렇게 높고 저렇게 단단하고 저렇게 냉혹합니다. 만약 우리가 승리와 비슷한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희망은 자신과 타인의 영혼이 절대 존엄하며 어떤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그 영혼과 함께하는 따뜻함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내가 먼저 단단한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되어 언젠가 저 바위를 부숴버리겠다”는 용기·의지와 서원(誓願)이 없으면 영원히 ‘비구니·수녀·여성목회자’ 차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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