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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연구원 ‘우바이’ 세미나-1. 초기불교의 재가여성들

기자명 조승미

“우바이는 수행·전법자이며 교단 지탱하는 든든한 후원자”

▲ 스리랑카 담불라에 있는 골든템플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우바이들이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초기불교의 팔리(Pāli) 문헌들을 통해 초기불교 재가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를 세 가지 부분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후원자로서의 재가여성들과 그들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특히 왕비나 장자의 딸들이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가 사회적으로 교세를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보시제일 위사카(Visākhā)의 사례다.

두 번째는 재가여성의 수행력이다. 웃타라 난다마타(Uttarā Nandamātā)는 니까야에서 선정제일 재가여성으로 언급되었는데, 이는 재가남성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재가여성의 지도력이다. 재가여성은 후원자와 수행자에서 더 나아가 실제 법을 전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비구니를 포함하여 초기불교 여성들에게 중시되었던 여성들의 커뮤니티와 그 속에서 요청된 전법의 리더십으로 해석되는데, 여기에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문제일 쿳줏타라(Khujjuttarā)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앙굿따라 니까야’의 ‘으뜸의 품’에서 10명의 으뜸 재가여성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중에서 다시 난다마타와 쿳줏타라는 ‘상윳다 니까야에서 “나의 재가 여성신도들 가운데 표준이고 모범”이라고 붓다에 의해 칭송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세 여성들은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재가여성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위사카(Visākhā)는 붓다의 주요 재가여성 제자이면서 교단을 보살피는 사람들 중에서 최고라고 인정받았다. 그녀는 초기불교의 다양한 문헌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위사카는 앙가국의 대표적인 장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부호의 딸 위사카는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로웠으며 일찍이 부처님의 교화로 수다원의 도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위사카는 사왓티(Sāvatthī)의 장자 미가라(Migāra)의 며느리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문헌에서는 성대한 결혼식 준비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위사카 집안의 재력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가 이와 같이 부와 사랑을 한 몸에 얻게 된 인연으로서 전생의 보시 공덕 특히, 수많은 승려들에게 발우와 의복 등을 많이 보시하였음이 수차례 소개된다.

하이라이트는 위사카가 결혼식 때 입은 장신구의 제작인데, 온갖 진귀한 보석으로 치장되어 그 비용만도 어마어마한 액수이지만, 4개월간 소요된 그 준비기간 동안 왕과 그 신하 등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축제가 진행되게 할 정도의 재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장신구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 이유는 위사카가 나중에 이 옷을 교단에 보시하여 사원을 건립하였기 때문이다. 이 승원의 이름이 유명한 녹모강당(鹿母講堂, Migāramātupā sāda)인데, 정식명칭은 사왓티의 동쪽에 있는 정사라는 뜻의 풉바라마(Pubbārāma, 東園)이다.

위사카가 보시한 이 강당은 유녀 암바팔리(Ambapali)가 보시한 망고동산의 사원과 더불어 붓다 당시 여성이 건립한 대표적인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재가여성의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볼 수 있다. ‘법구경’ 주석서에서는 이 강당의 공사 책임자를 신통제일 목련존자가 맡아서 매우 빠르게 완공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건물의 규모는 총 2층에 무려 1000개의 방이 있었다. 다른 여성이 이 사원에 물품을 보시하고자 하여도 필요한 것을 찾기 어려웠다고 할 정도로 위사카는 최고의 시설로 사원을 건립하였다. 붓다는 후반기 생애를 주로 사왓티에서 안거를 보냈는데, 제타와나에서 가장 많은 18안거를 보냈으며 나머지 6안거를 이곳 풉바라마 동원정사에서는 보냈다고 한다.

위사카는 많은 재가여성 보시자들 중에서도 보시행의 으뜸으로 평가받았는데, 사원을 건립하는 등의 막강한 재정적 후원 이외에도 그녀의 보시는 매우 일상적인 신행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으뜸의 품’에서는 “웃타라 난다마타(Uttarā Nandamātā)가 선정(禅定) 제일이다”라는 선언이 있고, 상윳다 니까야에서는 표준이 되는 재가여성 제자로 쿳줏타라와 함께 웰루칸다키야 난다마타가 언급되었다. 이 경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한 번 더 포함되었는데, 자세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신심 있는 우바이는 바르게 원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나도 우바이 쿳줏타라와 웰루칸타키 마을의 난다의 어머니처럼 되기를!’ 비구들이여, 이들은 내 우바이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니 다름 아닌 쿳줏타라와 웰루칸타키야 난다마타이다.”

우바이 제자 앞부분에서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부분이 차례대로 설명되었는데, 비구에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비구니는 케마와 웁팔라완나가 제시되고 있어 이 제자들은 각각 지혜와 신통력 즉 선정수행을 대표하고 있어, 쿳줏타라와 웰루칸타키야 난다마타 또한 지혜와 선정의 대표 우바이 위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법구경’ 주석서에서는 난다의 어머니 웰루칸다키야와 웃타라가 모두 각각 등장하고 있다. 웃타라의 경우 ‘우바이 웃타라 이야기’ 항목이 있어 보다 자세하게 소개되었는데, 그녀에게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뜨거운 기름을 뒤집어쓰고도 무사했다는 스토리이다.

웃타라의 이 이야기는 붓다의 17안거 시기의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웃타라의 아버지 푼나는 수마나 장자의 집에서 일을 해주는 가난한 하인이었는데, 승가에 보시 공양을 많이 올린 공덕으로 황금을 얻어 큰 부자가 되고 신분도 재정관으로 상승하였다. 그리고 푼나는 붓다와 그 제자들을 공양에 초청하고 법문을 들어 그 가족이 모두 수다원과를 성취한다. 그러던 어느 날 푼나는 이교도인 수마나 장자의 요청으로 자신의 딸 웃타라를 며느리로 시집보내게 된다.

웃타라는 불교승단에 공양을 올려도 좋다는 약속을 시아버지가 지키지 않자 친정아버지로부터 거금을 전해 받고 그것으로 남편 시중을 들 유명한 기녀 시리마를 고용한다. 웃타라는 보름동안 붓다와 승려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느라 분주한 날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 시리마는 웃타라에게 질투를 느껴 펄펄 끓고 있는 기름을 한 국자 퍼서 웃타라에게 다가갔다. 웃타라는 증오를 품고 다가오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녀를 대상으로 삼아 자애삼매에 들었다. 그리하여 뜨거운 기름이 차가운 물처럼 느껴져 몸에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웃타라는 정신을 차리고 용서를 비는 시리마를 붓다에게 데리고 가서 법문을 듣게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애삼매 경험을 부처님께 말씀드린다. “시리마의 도움으로 공양도 올리고 법문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내가 화를 낸다면 기름이 나를 태울 것이고 조금이라도 화가 없다면 나를 태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애의 마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웃타라가 선정 제일의 우바이로 언급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삼매를 통한 신통력의 힘으로 뜨거운 기름의 해를 입지 않았던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선정은 자애삼매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 재가 여성들이 선정을 닦은 방식의 하나를 엿볼 수 있다.

쿳줏타라(Khujjuttarā)의 이야기는 니까야와 주석서 문헌 등에서 독립적인 항목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고, 주로 ‘법구경’ 주석서에서 사마와티(Sāmāvatī)의 이야기 속에 수록되어 소개되고 있다. 사마와티는 꼬삼비의 대표적인 장자인 고사카(Ghosaka)의 양녀이자 우데나왕의 왕비였는데, 이러한 그녀의 배경과 지위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 그녀와 관련한 내용은 매우 자세한 반면, 쿳줏타라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수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재가 여성 중에서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붓다로부터 가장 모범이 되는 우바이 제자 두 명 중의 하나로 뽑힌 위상에 비하면, 문헌 속의 비중이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그녀가 본래 고시타(Ghosita) 즉 고사카 장자의 집에서 보모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사마와티(Sāmāvatī)가 시집을 오면서 왕비의 시종으로 따라온 것 같다. 우데나 왕은 왕비에게 꽃을 올리라고 쿳줏타라에게 매일 여덟 닢의 동전을 주었다. 쿳줏타라는 수마나(Sumana)라는 꽃장수에게 꽃을 샀는데, 어느 날 수마나가 부처님을 초청하여 공양 올리는 것을 도우면서 법문을 듣고는 수다원과를 얻었다. 쿳줏타라는 지금까지 꽃을 사면서 네 닢의 동전만 쓰고 네 닢은 자신이 가지곤 했는데, 그날은 여덟 닢으로 모두 꽃을 사서 왕비에게 전해준다. 꽃을 보고 놀라는 왕비에게 그간의 일을 사실대로 고백하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법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왕비는 자신도 불사의 감로수를 마시고 싶다고 법을 청하였다. 쿳줏타라는 향기로운 목욕물과 아름다운 옷을 준비해 달라고 하고 법상에 앉아 왕비와 500여인들에게 법을 설했다. 이 법을 듣고 그들은 수다원과에 이르렀으며 쿳줏타라에게 삼배를 올리면서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 돌아와 그대로 들려주기를 청했다. 쿳줏타라는 매일 붓다의 법문을 듣고 왕비와 왕궁여성들에게 전해주다 보니 어느덧 삼장을 외우게 되었고, 부처님으로부터 다문제일의 우바이라고 인정받게 된다. 이 시기는 대략 붓다의 9년째 안거 시기의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한편, 우데나 왕에게는 또 다른 왕비 마간디야가 있었다. 사마와티를 질투하여 왕궁에서 추방시킬 음모를 계속 꾸며왔는데, 모두 실패하자 결국 사마와티의 처소에 불을 질러 왕비와 시녀들을 모두 죽였다. 이때 사마와티 왕비는 여인들에게 동요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자애의 마음으로 삼매에 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모두 죽기 전에 사다함이나 아나함과를 증득했다고 한다. 사마와티는 ‘으뜸의 품’에서 자애의 마음이 으뜸인 우바이로 선언되었다.

사마와티와 왕궁 여인들이 이처럼 극악한 상황에서 자애삼매에 들어 도과를 증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쿳줏타라의 전법 힘이 얼마나 강력하였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쿳줏타라는 단순히 법문을 듣고 전달하는 역할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수다원의 과위를 얻었기 때문에, 증득한 깨달음의 지혜가 확고하였으며, 이를 고스란히 이 여성들에게 전달되게 한 진정한 법사였던 것이다.

▲ 조승미
이처럼 초기불교의 재가여성은 후원자로서의 영향력과 신통력으로 표현되는 선정 수행력, 그리고 전법가로서의 지도력을 모두 발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귀중한 역사적 유산은 현대 재가불교여성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는 것 같다. 특히 후원자로서 재가여성의 권한이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던 것과 재가여성의 뛰어난 수행력을 찬탄하고 격려한 비구 지도자의 모습 그리고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전법 지도자에 대한 교단의 지원과 인정 등이다.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 강사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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