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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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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1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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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경안
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창시절 소풍으로 만난 절
교회 다니다 진리에 목말라
당당한 스님 본 이후 귀의
지장보살 원력, 삶의 전환점


항상 할머니들과 스님들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밥을 그냥 주는 곳,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런 장소가 절이었다. 불교와 첫 만남도 북적이는 그런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기억이다. 학교 소풍 장소가 줄곧 절이었다. 불교문화재를 본다거나 설명을 듣거나,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다기보다 단지 많은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나이를 먹고 사회서 생활하면서 인생의 쓴맛도 보고 좌절을 겪어보니 공허함을 느꼈다. 거창할 것 없지만 인생의 허무함이랄까. 복잡한 감정이 실타래처럼 얽혔고 나름 정리도 해봤지만 수많은 오류를 거쳤다. ‘진정한 진리란 무엇일까? 나는 왜 여기서 허우적대고 힘들어하며 남 탓만 하고 있을까….’ 문득 자각했다.

교회를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찬하고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짖는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한 인간의 애절한 구애의 외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기도 후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때론 가슴 아픈 일을 자신의 일처럼 슬퍼해주기도 했다. 마음 따듯한 분들도 많았고 배려와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성서를 공부하면서 사랑보다는 분노와 화가 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목사는 무조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했다.

어떤 명확한 방향이나 진리 탐구의 길을 향한 목마름에 시달렸다.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거리를 걷는 스님과 마주했다. 주위 시선에도 거리낌 없이 당당한 그 모습은 알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온갖 거짓 속에서 약하지만 굳건히 살아 숨 쉬는 진실의 형상을 본 것 같았다.

어느 날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껍데기만 남아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진실하지 못한 내 모습에 역겨움이 났다. 그 순간 내 발걸음은 절로 향하고 있었다. 뭐랄까. 이제 더 이상 가식적으로 살기 싫다는 어떤 욕망이 절로 이끌었다. 결국 오전에는 교회, 오후에는 절. 이런 두 집 살림을 이어가던 중 교회 나가는 일을 관뒀다.

사시예불에 처음 참석하면서 지심귀명례와 정근을 알게 됐다. 부처님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스님들과 노보살의 정성스러운 108배는 겉돌았던 신행에 채찍을 가했다. 경전 속 부처님 말씀은 거짓된 욕망과 헛된 욕심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짚어냈다. 지장보살과 만남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계기였다. ‘지장경’을 읽으면서 모든 중생이 성불하지 않으면 자신 또한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원력과 깊은 뜻은 이기적으로만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한 가지 생각이 크게 바뀐 것도 있다. 그동안 집에서만 하는 의식으로 여기던 제사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백중이라고 해서 음력 7월15일, 절에서는 하안거를 마친 스님들이 영가를 천도한다. 천도의식을 보면서 삶과 죽음 모든 순간에 부처님의 사랑과 가르침이 공존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특별한 설명이나 교육이 아닌 몸으로 몸소 보여주시는 스님, 진심으로 영가들을 위해 기도하는 보살님들의 정성이 무척 경건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중생제도를 위한 쉼 없는 부처님 가르침을 보게 되는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내게 불교가 다가왔고 나 역시 불교에 다가갔다. 조금이나마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혹은 좀 더 부처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행동으로 옮기는 이 모든 과정이 진정한 불교 교리가 아닌가 싶다. 포교사를 알게 됐고 부처님으로 가는 길을 보게 됐다. 불교와 삶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싶다. 삶 속에 부처님 가르침을 녹여 의식하지 않을 때도 누구에게나 자비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참불자로서의 자세를 갖는 게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이 주문을 항상 몸에 지니며 마음의 죄를 짓지 않고자 노력한다. 항상 청정한 생각,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간직하고자 정진, 또 정진하겠다.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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