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예양의 나를 알아주는 사람
44. 예양의 나를 알아주는 사람
  • 김정빈 교수
  • 승인 2017.12.05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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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매우 특별한 신하로 대우했소”

▲ 그림=근호

춘추시대 말, 진(晉)나라에는 중항씨, 범씨, 지씨, 한씨, 위씨, 조씨 등 여섯 대부 등 여섯 대부가 임금인 진후(晉侯)의 힘을 무력화한 다음 멋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신념 가진 사람 죽음 앞에서 초연해
신념 중에서 가장 강한 신념은 종교
종교는 인간의 유한한 삶 넘어서는 길
알아주는 이에게 헌신하며 초월키도


여섯 대부들 간에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예양(豫讓)은 처음에는 중항씨를 섬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중항씨가 범씨에 의해 정복되자 그는 옛 주군을 버리고 범씨의 신하가 되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지씨에 의해 범씨가 멸망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옛 주군을 버리고 지씨의 신하가 되었다.

실권자가 네 명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대부들 간에 경쟁이 계속되었다. 가장 유리한 사람은 진후가 머무는 수도 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지씨였다. 그는 진후를 겁박하여 한씨에게 성 15개를 바칠 것을 명령하도록 했다. 한씨는 고민에 빠졌다. 진후에게 성을 바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 성은 지씨의 차지가 될 것이고, 그것은 경쟁자에게 힘을 보태주는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목상일 뿐이더라도 윗사람인 제후의 명령을 거부하는 건 어려웠다. 윗사람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어떻게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상하간의 위계를 범하는 일을 참람한 일로 여기던 춘추시대의 사회 분위기는 그런 하극상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한씨는 성을 바쳤다. 재미를 붙인 지씨가 같은 방법으로 위씨에게도 성을 바칠 것을 명령했고, 위씨 또한 내키지 않는 그 명령에 따랐다. 마지막으로 지씨는 조씨에게도 성을 바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조씨는 성을 바칠 것을 거절했고, 이에 지씨는 한씨, 위씨와 연합군을 편성하여 조씨를 공격했다.

조씨는 비밀리에 책사를 한씨, 위씨에게 보내어 말했다.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린 법, 내가 망하게 되면 그 다음은 당신들이란 걸 모른단 말이오?”

이에 한씨, 위씨는 조씨와 힘을 합쳐 지씨를 공격하여 지씨를 멸망시켰다. 조씨의 수장인 조양자(趙襄子)는 지씨의 머리를 베어 그 해골에 옷칠을 한 다음 요강으로 사용했다. 이에 예양은 주군을 능욕하는 조씨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인부들 틈에 썩여 들어 양자의 집에 들어가 변소에 숨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 양자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양자는 그 나름 영웅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예양을 처단하라고 권했지만 양자는 “그는 의사(義士)다”라고 말하며 예양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예양은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고,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환자처럼 험한 모습으로 변장했다. 그런 모습으로 다리 아래에 숨어 양자를 기다렸지만 불행하게도 또다시 발각되고 말았다.

양자가 예양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말해 보시오.”
“너는 처음부터 지씨의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 너는 중항씨를 모시다가 중항씨가 범씨에게 멸망하자 범씨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소.”
“얼마 안 있어 지씨가 범씨를 멸망시켰고, 그때에도 너는 범씨를 버리고 지씨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소.”
“그리고 이제 지씨는 나에 의해 멸망했다. 그렇다면 너는 이제 지씨를 버리고 나의 사람이 되어야 옳거늘 왜 유독 지씨만을 위해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냐?”

질문을 받은 예양이 잠시 숨을 고르고나서 말했다.

“내가 중항씨와 범씨의 사람이었을 때 그들은 나를 평범한 신하로 대우하였소. 따라서 나는 그들이 멸망했을 때 평범한 신하로서 그들을 버리고 새 주군을 섬겼소.”

예양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지씨는 전에 내가 모시던 주군과 달랐소. 그는 나를 알아주었소. 내가 그의 휘하에 들자 그는 나를 특별한 신하로 대우했소. 그는 대부였지만 나를 대부 급의 신하가 아니라 제후 급의 신하로 대우했던 것이오. 그에게 나의 의견은 존중되었고, 나의 계책은 채택되었소. 그는 모든 중요한 일을 나와 의논했고, 내가 하는 모든 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믿어주었소. 이렇듯 그가 나를 알아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소. 그러니 내가 어찌 그를 배반할 수 있겠소이까?”

예양이 말을 이었다.

“죽기 전에 한 가지 청이 있소. 내가 이대로 지하에 가면 주군을 뵐 면목이 없소. 당신이 한 선비의 진심을 이해할 줄 아는 군자라면 나로 하여금 당신의 옷이나마 벨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 바라오.”

조양자는 부하를 시켜 자신의 옷을 한 벌 가져오게 했다. 예양은 등에서 장검을 뽑아들고는 한참 동안 옷을 노려보았다. 살기가 사방 백 척까지 시퍼렇게 뻗쳤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예양이 칼을 높이 쳐들었다. 공중으로 훌쩍 한 길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여 옷을 힘껏 내리쳤다.

베어진 옷 사이로 퍽! 하며 진달래빛 붉은 피가 흥건하게 배어나왔다. 예양은 곧 칼을 자기에게로 돌려 겨누어 자결했다. 조나라 선비로써 그 일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비겁해지게 되지만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다.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죽음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이며, 그에게 있어서 신념은 삶의 의미의 집약이기 때문이다.

신념 가운데 가장 강한 신념은 종교 신념이며, 이는 역사를 통해 무수히 증명되었다. 역사는 종교 신념을 가진 채 죽음의 강을 초연히 건넌 수많은 순교자들을 증언한다. 이차돈과 김대건이 그런 사람이었다.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이차돈이 신봉했던 불교도, 김대건이 신봉했던 기독교도 없었다. 그들은 애매하고 불확실한 천신과 조상신을 믿었을 뿐 오늘날 종교라고 불리는 수준의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국인이라고 해서 죽음을 넘어서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이 찾아낸 것이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였다. 종교는 유한한 삶을 넘어서는 길이며, 고대의 중국인들은 알아주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방식으로 유한한 삶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예양이지만 우리는 중국사에서 수많은 예양을 발견한다. 널리 알려진 제갈공명도 그중 한 사람이며, 우리 역사에도 사육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례가 있다. 비록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을 알아주는 일은 그렇게 귀중하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일 또한 그렇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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