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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입장표명 없는 답답한 불교계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7.12.12 10:52
  • 댓글 0

‘낙태죄 폐지’ 청원 동의자가 23만명을 넘어서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대한 실태조사와 사회적 논의를 약속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부를 향해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사회 이슈로 급부상한 낙태 문제를 불교계도 심도있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낙태 행위는 죄인가? 여성에게만 낙태죄를 묻는 게 정당한가? 진정 임신 중단 권리를 여성에게 줄 수는 없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변할 책임이 정부는 물론 불교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율장에 명시돼 있는 ‘낙태 구절’조차 언급하지 않고 침묵만 지키는 건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겠다는 책임 회피와 다름없다. 

어떤 부인이 친분 있는 스님에게 부탁해 낙태하는 약을 복용했고 아이는 생을 달리 했다는 사실을 전제한 상좌부 율장의 대품 ‘대파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수계한 승려는 개미라도 고의적으로 죽이면 안 된다. 낙태라 해도 인간의 생명을 고의로 빼앗는 승려는 진전한 사문이 될 수 없다. 한번 깨져 버린 돌을 다시 붙일 수 없듯이 인간의 생명을 고의적으로 빼앗은 승려는 더 이상 불제자가 아니다. 이것은 평생하지 말아야 한다.’ 낙태를 고의적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상좌부는 낙태에 동조한 승려에게 바라이죄를 물었다.

낙태를 엄격히 금하는 건 태아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상좌부 율장에서 인간은 ‘모태 속에서 식(識)이 현현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존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식이 현현하는 순간’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잉태 순간에 식이 현현할 것이라 추론하는 것이 과도한 비약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불교계는 ‘태아도 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한 율장을 토대로 ‘낙태는 살인과 다름없다’는 목소리를 진즉부터 냈어야 했다.

그러나 불교계는 한해 평균 100만 건의 낙태가 만연하며 ‘낙태천국’이라 불릴 때도 침묵했다. 우란분절이나 천도재를 통해 낙태아의 영가를 위로하고, 낙태 행위를 한 당사자의 참회를 이끈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낙태에 대한 논의조차 거의 없다 보니 낙태죄 폐지 찬반 표명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생명을 의제로 한 불교적 공론이 앞으로도 없다면 삶의 연속선상에 놓인 존엄사는 물론 살처분, 아동학대, 성소수자 인권 등에 대한 견해 피력은 물론 메시지도 전할 수 없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미래불교원’을 통해 사회적 의제들을 풀어간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미래불교원 출범을 기대한다.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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