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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보복정치 논란을 파하라

‘덕(德)으로 원한을 갚으면[以德報怨] 어떠냐’는 물음에 공자는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덕으로 덕을 갚고, 곧음으로 원한을 갚아라”고 대답하였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 참 좋음 말이다. 노자(老子)도 같은 뜻의 말을[報怨以德] 했고,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으니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원한 다 잊고, 그 대상들을 사랑하여 포용하고 살수 있다면….

그렇지만 현실의 일은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공자의 말은 그러한 측면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원한과 덕을 갚음에 차등이 없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인 것이다.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역량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 무한하게 베풀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언제나 엄격한 차등에 의해 베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어기게 되면 결국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곧음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것도 쉽지 않다. 원한이 생기면 그것은 단지 사실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마음속에서 증폭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하여 미움과 원망이 자라나게 되고, 원한을 갚을 기회가 오게 되면 그 증폭된 미움과 원망이 보태져서 갚아야 할 선을 넘어선 보복이 행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갚음 당하는 쪽의 원한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공자가 “곧음으로 원한을 갚으라!” 한 것은 이러한 것을 경계한 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에서도 이렇게 ‘갚음’이라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되었을 때 얼마나 힘들어지겠는가? 특히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곧음’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더더욱 커지게 된다. 단순히 너그러움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역사가 바로잡히지 않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 대한 용서와는 달리 ‘사회정의’의 구현이라는 명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적당히 관용으로 넘기자 하면,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계속 발생할 빌미를 주게 마련이다. 그러니 반드시 ‘바름’이라는 기준으로 잘못된 것을 청산해나가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일에 특히 중요한 것은 언제나 ‘바름’이 앞세워져야 한다는 점이다. 집단 간의 ‘원한’이 증폭되어, 그것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한다면, 이 또한 보복의 악순환을 이루게 되는 것이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사태가 될 것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에 이 이야기를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복”을 말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말이 옳으냐 그르냐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난다. 지금 정치적 입장을 둔 양극화는 모두 원한의 증폭이라는 양상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완전히 객관적인 ‘곧음’이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오늘의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옳으냐가 문제가 아니고, 누구 편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만큼 공자가 말한 ‘곧음’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증이겠지만, 누가 나서도 다른 편의 돌팔매를 맞게 된 현실이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하여 어느 편도 옳은 것은 없으니, 그냥 그렇게 싸우면서 넘어가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경우 우리가 마지막으로 물어야 할 곳은 국민의 뜻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율은 국민이 문재인 정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일시적인지 아닌지를 논할 필요는 없다.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것이 국민의 뜻일 뿐이다. 그러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섣불리 ‘보복정치’라고 비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양극화에 편승한 발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급하게 모든 것을 청산하려고 서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실적 근거 없는 ‘보복정치’ 논란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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