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겨울을 나는 방법
46. 겨울을 나는 방법
  • 김용규
  • 승인 2017.12.12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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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생명들은 혹한·찬바람 겸손히 맞는다

해마다 동지가 다가올 즈음이면 나의 몸은 아팠습니다. 신기하게도 요맘때 기필코 몸살을 앓고 나서야 내 몸은 대한과 소한의 무거운 추위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건너냈습니다. 이렇게 겨울 입구에서 호되게 한 번 앓고 나면 겨우내 아픈 일 없이 그토록 멀게 느껴지는 입춘을 아주 가볍게 맞을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그렇게 반복되는 몸살이 하도 신기하고 정확해서 나는 그 몸살에 ‘동지앓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각자 넘어서야 할 혹독한 시간
죽음 맞아도 다음세대 지켜내


동지 무렵에 꼭 앓고 넘어가는 내 몸의 체험을 최근 몇 년은 걸렀는데 그래서 이제 ‘동지앓이’를 극복한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대설’을 통과하며 몇 년 만에 다시 호된 몸살을 얻어 몇 날을 끙끙 앓고 있는 중입니다. 생강과 대추, 쌍화탕의 재료를 달여 마시며 초반의 몸살기와 다퉜으나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어가며 씨름을 하는 중입니다. 여하튼 나라는 생명이 본격 겨울을 만나는 오래된 방법의 하나는 일단 먼저 독한 몸살을 온 몸으로 맞아 한 해 동안 누적된 내 몸 안의 적폐를 일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앓는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일단 앓고 나면 반드시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또한 다시 앓을까 두려워 단단히 몸을 여미고 또한 조심하게 되어 뒤이어 찾아오는 더 깊은 혹한과 찬바람을 겸손하게 맞으면서 긴 겨울을 간단히 건너곤 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딴 생명들은 어떻게 이 독한 겨울을 건널까요? 그들 중 극히 소수를 빼면 대부분의 생명들은 집을 짓는 특별한 건축 기술도, 이불을 짓는 재주도 없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마다 이 지독한 겨울을 살아서 건너내는 것일까요?

그 방법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신비가 더 많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낙엽으로 잎을 지우고, 얼지 않도록 지상부의 물을 가능한 뿌리 쪽으로 회수하고 남은 수분에는 부동의 물질을 배치하고…’ 이렇게 풀이나 나무의 경우야 움직이지 않는 생명이므로 그 연구와 관찰의 서술이 넉넉한 편입니다. 하지만 100만 종이 넘는다는 곤충이나,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땅속이나 물속의 생명 등에 대해 우리가 아는 지식의 깊이는 생각보다 얕습니다.  딴 생명들의 곤경과 아픔을 내 것처럼 여겨보는 경험 한 번 없이 주어진 생을 살다가 가는 삶은 얼마나 붓다의 가르침으로부터 먼 것이고 허허로운 것일까요?

두꺼비는 떠났던 숲으로 되돌아와 숲이 품고 있는 체온으로 겨울을 나고, 계곡의 개구리는 차츰 얼기 시작하는 개울물 아래 바위나 돌 틈, 물에 모인 낙엽 등에 숨어들어 죽은 듯이 잠든 상태로 겨울을 납니다. 지렁이는 얼어들어오는 지표면의 두께보다 더 깊은 땅 속까지 굴을 파고 들어가서 겨울을 견딥니다. 추위가 극심한 어느 지역의 지렁이는 무려 지하 5m가 넘는 깊이로 추위를 피해 숨어들기도 합니다. 어떤 곤충들은 지렁이와 마찬가지로 땅 속으로 파고들어 겨울을 나고, 다른 곤충들은 죽은 나무의 몸 안으로, 혹은 껍질 속으로, 열매 속으로, 아니면 가득 쌓인 낙엽더미 아래로 피신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각자 넘어서야 할 제 삶의 혹독한 시간을 이겨냅니다.

그들처럼 산 채로 겨울을 날 방법이 없는 연약한 곤충들은 다음 세대를 지키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스스로는 죽더라도 알이나 고치 상태인 2세들이 겨울을 가장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마땅한 장소를 찾아 산란한 뒤 겨울 입구에서 속속 사라집니다. 어떤 녀석들은 나뭇가지 아래쪽에, 손으로 부숴보려 해도 좀체 깨지지 않는 견고한 집을 지어 겨울을 버티고, 또 어떤 녀석들은 나의 흙집 기둥에, 처마에, 심지어 오래 보관 중인 스웨터 솔기에… 예술에 가까운 소재와 색과 형태의 집을 짓고 들어가 겨울을 납니다.

겨울 입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해마다 습관처럼 내 몸이 아플 때마다 나는 생각하곤 했습니다. ‘깊은 굴을 파야 하는 지렁이도, 나무속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저 벌레들도, 얼어오는 개울물 아래의 개구리도, 저 예술 같은 고치를 틀어내고 들어앉은 누군가의 2세들도 나처럼 겨울을 나기 위해 아픈 시간 보냈겠구나. 모두 부디 무탈한 겨울 보내기를!’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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