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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 망해가는 데 불교계는 지켜만 볼 텐가특별기고-최성민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최성민  |  mtea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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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4  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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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산절로야생다원 대표가 ‘지금 한국 차는 질식상태, 불가다도 성찰과 선도적 역할이 절실하다’는 제하의 글을 보내왔다. 한겨레신문 기자와 여론매체부장 등을 역임한 최 대표는 성균관대대학원에서 ‘한국 수양다도의 모색’을 주제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수양다도 연구가로 현재 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회 대표도 맡고 있다. 저서로 ‘차의 귀향’ ‘차 만드는 사람들’ 등이 있다. 편집자

국산차 소비량 커피 15분의 1
2007년 ‘농약차’ 보도 후 냉담
차문화 꽃피운 불교계도 비슷
사찰마다 일회용 커피 자판기

보이차‧황차가 불교계도 대세
보이차 꽉 찬 스님 방도 있어
차에 깃든 수행의미는 퇴색
스님들, 다도 성찰 뒤따라야

불교는 이 땅에 차문화를 들여왔고, 조선후기 초의선사는 한국 차문화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동다송’을 지어 ‘한국 차의 성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중국 당나라 시대 이래 차하면 불교이고 조주 선사의 ‘끽다거’나 원오극근 선사의 ‘다선일미’는 불가가 이룬 차문화의 극치를 상징하는 화두로 오늘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차는 쇠퇴일로를 걷다가 거의 질식 상태에 놓여있다. 한국 차의 사양화는 2007년 이래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까지 홈페이지를 열고 매우 활기차게 홍보 및 판매를 하고 있던 유명 다원이나 명인들이 그 홈페이지 운영을 3~4년 전 상황에서 멈춰버린 사실에서 최근의 한국 차 현실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커피 소비량이 6조원인데 비해 국산 차 소비량은 4000억원에 그쳤다는 통계자료도 나와 있다.

한국 차 쇠퇴의 시작은 2007년 한 방송 프로그램(KBS 소비자고발)의 무분별한 ‘농약 잔류량’ 보도 파문에서 비롯됐지만, 그 기억이 잊혀질 때도 됐는데 소비자들이 한국 차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왜일까? 국내 소비자들이 국산 차에 대한 실망감을 돌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욱 심각한 일이다.

차를 이 땅에 들여와 한때 차문화의 꽃을 피우게 했던 불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탄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와도 부족할 판이다. 그러나 불교계 어디에서도 현재 한국 차와 차문화의 질식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반면 여느 절 주지스님들의 방은 고가의 다구와 차탁에 중국 보이차 전시장 같은 곳들도 있다. 깊은 산속 웬만한 절집마다 커피 자판기를 들여놓은 지 오래된 일이고 서울 조계사 앞마당에서 인스턴트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신도들은 없을 것이다. 요즘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한결같이 ‘다도 체험’이 들어있으나, 정작 초의 선사가 그랬듯이 직접 차밭을 가꾸고 제다를 하여 ‘독철왈신’(獨啜曰神)을 말하며 대중에게 차의 본질과 다도의 진의를 깨닫게 하는 절집이 몇이나 될까?

한국 차의 암울한 현실을 두고 일본 차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차 역시 당나라에서 불교와 함께 이입돼 오늘날 ‘일본 다도’와 ‘그린 티’라는 국제적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특히 일본 불가다도는 ‘세속화된 불가다도’라는 찬사가 얹혀진 ‘일본 다도’를 낳으며 일본 국민 심성을 수양하고 국민적 심미 기준을 제시하는 등 차의 ‘수양론적 기능’을 십분 발휘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 불가의 차와 차문화는 어떤가? 전남 무안군은 ‘초의 생가 복원’이라는 명분 아래 백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고대광실 건물들을 앉혀서 일대를 대규모의 사적지처럼 조성했다. 여기서 파생하여 초의의 이름으로 차를 만들고 파는 단체들도 있고, 초의 관련 에피소드를 연고로 삼아 한국 차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런 현상을 일본 다도의 예에서 보듯이 좋은 의미로 ‘한국 불가다도의 세속화’라고 할 수 있을까?

   
▲ 한국 차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초의 스님 초상. 출처 ‘차 만드는 사람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차는 ‘초의차’가 그랬을 것처럼 기가 막힌 차향을 풍기며 대중들을 유혹하고, 그러한 천향(天香)으로써 대중의 심성을 우주·자연과 합일시키는 다도 수양의 주체가 돼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차 시장이나 차 행사장에서 승복 입은 사람들의 활동은 눈부실 정도다. 승복 입고 직접 차를 만들어 파는 이도 있고, 승복 입고 공금을 지원받아 큰 건물을 짓고 ‘제다 교육’을 한다는 이도 있고, 승복 입고 국가 예산을 타내서 대규모 차 행사를 주관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활동과 한국 불가다도(또는 차문화)와 한국 차의 암울한 현실은 어떤 관계일까? 그들이 한국 불가다도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승려’임을 드러내는 사실과 간혹 그들 중 일부에 의해 ‘초의’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적이 주는 이미지가 한국 불가다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겠다.

그렇다면 그들이 한국 차계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과 현재 한국 차와 차문화가 쇠퇴 일로에 있는 현실은 한국 불가다도가 한국 차문화 현실에 선도적인 역할을 발휘하고 있는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한국 불가다도에 관심 있는 이들이나 당사자들이 한국 차의 왜곡되고 암울한 현실과 관련해 책임의식을 느껴주었으면 한다. 특히 승복 입고 한국 차계를 누비고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오늘 저녁 여느 절 템플스테이 ‘다도 체험’에서 중국 차가 아닌, 초의 스님처럼 우리 풍토에서 직접 일구고 가꾼 차밭에서 찻잎을 따서 정성스레 만든 차로써 참가자들에게 밖에서 듣지 못한 차의 본질과 초의 스님이 ‘동다송’에서 말하고자 했던 다도의 수양론적 기능에 대해 말해주는 주지 스님이 많았으면 좋겠다.

한국의 차농가들과 당국의 한국 차에 대한 위기상황 인식은 2015년 ‘차진흥법’ 제정과 2016년 ‘제다’의 문화재 지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차 관련 각종 재정 지원의 길이 열렸다. 이후 많은 차 관련 단체들이 여기저기서 대규모 차 행사(전시회, 다회 등)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행사들이 눈먼 돈 타내기와 ‘돈 쓰는 맛’에 치중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한국 차가 망해가고 있는 현실을 부채질이나 하듯이 대부분의 차 관련 전시회나 박람회의 주인공은 중국 보이차다. 지난 가을 광주에서 열렸던 어느 대규모 차 행사장에는 아예 ‘중국 보이차 특별전’인 양, 보이차 전시관을 아주 좋은 자리에 매우 크게 차려 주어 중국 현지인들이 와서 직접 보이차 시음을 주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차는 한국 차의 진수인 덖음 녹차가 아니라 시큼털털한 맛의 황차(이른바 ‘한국 발효차’)가 주류였다. 나는 이 행사도 한 승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 차 위기상황에서 불가다도의 역할이 아쉽다는 점과 함께, 지금 한국 차 위기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제다의 문제와 다도의 수양론적 기능에 대한 몰이해에 있다. 차 행사장에서 황차나 꽃차가 주류 역할을 하거나 중국 보이차에게 안방을 빼앗기는 것은 차향다운 차향을 내는 덖음 녹차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차 제다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지금도 ‘구증구포’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한국 차 제다의 ‘비법’ 행세를 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 차향이 왜 중요하며 그것이 다도 수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도대체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결과, 다도를 고급 옷차림에 떼로 몰려 앉아 폼 내며 황차나 ‘감잎차’류(사실 이런 종류의 ‘즙’ 또는 ‘탕’을 ‘차’라고 해서는 안 된다)를 피상적으로 나눠 마시는 일로 착각하고 있는 모습이 이를 입증한다.

   
▲ 최성민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대부분의 차 관련 행사장에서 관행으로 돼있는 이런 적폐 현상, 즉 정부 돈 타내서 쓰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고 한국 차의 위기 상황이나 차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외면하는 기존의 행태가 청산되지 않는 한 한국 차와 차문화는 쇠망의 길로 치닫는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불가다도의 차문화 리더십이나 한국 차계에서 ‘차의 대가’ 행세를 하는 승려들의 불가다도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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