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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신도들 장례 외면 말아야

한국불교를 비판하거나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주제 하나가 49재이다. 절이 돈벌이 수단으로 49재를 활용하고 있다고들 비판한다. 심지어는 아예 절에서 49재를 없애야 한다고 자학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불교인들이 자학적으로 49재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병원의 장례식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장례문화 개혁에 앞장서는 것이 바람직스러워 보인다. 오늘날 한국인들의 장례문화는 병원장례식장이 주도하고 있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면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져서, 이틀간 조문객들을 맞이한 다음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일찍 발인을 하게 된다. 매장을 하거나 납골당에 안치할 때에 간단한 의식을 치르기는 하지만 장례의 대부분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병원 장례식장 풍경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곳은 우리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의 공간이 아니라, 쓸모가 없어진 폐기물 처리 공간이다. 우리가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도대체 이런 식의 장례식장 풍경이 어떻게 보편화될 수 있었을까 싶다.

오늘의 병원 장례식장은 영안실(시신보관실의 세련된 표현)에서 발전해 왔다. 대부분의 병원 장례식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병원 후미진 곳에 있는데, 병원 장례식장 기원이 시신보관실에 있기 때문이다. 시신보관실은 보통 병리해부과와 연관 때문에, 또 환자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눈에 뛰지 않는 병원 뒤쪽 지하에 설치되어야 했던 탓이다. 병원 장례식장의 발전과정이 이러하다보니 나름대로 잘 꾸며진 예를 보아도, 편의와 효율성만이 반영되어 있을 뿐 장례식이 어떠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반영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병원 장례식장도 많이 세련되고 좋아졌지만, 따지고 보면 병원 장례식장의 발전도 병원의 돈벌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장례 문화의 개선과는 관련이 없다.

공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장례식장의 사람들 태도에서 경건하거나 엄숙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단골 밥집에 온 것 같다. 죽은 이가 요절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시끌벅적하게 놀아서 상주들의 가라앉은 마음을 올려 주는 것이 좋은 태도라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상주와 친구가 되는 이들은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이 도리라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화투판을 벌이기도 한다. 평소 도가 사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는 아내가 죽자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장자를 방불케 한다.

복잡하고 거대한 도시 속에서 경건하고 엄숙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편의와 효율, 의미의 망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의례행위를 제안하는 것도 부담스런 일일 수 있다. 또 어떤 불교인들은 장례불교를 그만두어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올바른 장례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불교인들의 역할일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생활 속 불교일 것이다. 생활 속 불교를 이야기하면서 선불교식 해석만 할 일이 아니다. 죽음은 종교가 늘 관여해 오던 본연의 일이다. 49재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불교가 장례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오늘날 절에서는 49재는 지내지만 장례식은 치르지 않는다. 스님들이 병원장례식장이나 매장지에 가서 불공을 하는 일은 있지만, 절 차원에서 신도들의 장례를 치르는 경우는 없다. 절에서의 장례는 그 절에 큰 공이 있는 이른바 큰스님들을 위해서만 치러진다. 신도들의 장례에 대해 절에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종단 차원에서든 개별 사찰 차원에서든 장례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본다면 이 또한 한국불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종인 경희대 객원교수 laybuddhistforum@gmail.com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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