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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연구원 ‘우바이’ 세미나-3. 실상화 윤용숙의 삶과 나눔불사

선행·봉사 차원 넘어 자리이타 ‘보현행’으로 회향

▲ 실상화 윤용숙 보살은 한국 재가불교운동을 견인한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자료사진

불교 역사상 수많은 우바새, 우바이가 존재했었다. 그들 중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모범이 될 만한 우바새, 우바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출가의 비구, 비구니에 비하여 재가의 우바새, 우바이에 대한 전기의 편찬 역사는 그렇게 튼실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불교 교단의 성격 자체가 출가주의라고 하는 점이 배경에 놓여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에 더하여, 동일한 재가자라고 하더라도 우바새 보다 우바이에 대한 전기적 서술은 더욱더 부실한 형편이다.

나눔 통해 재가불교운동 참여
불교문화·문화재 선양에 앞장
법보시로 문서포교에도 매진
불이회·보덕학회 등 지속 위해
여섯 번에 걸쳐 활동기록 정리

우바이 중에서 전기를 남길 정도가 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정도의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도 다양할 것이다. 그 다양한 답변을 여기서 다 전개할 수는 없다. 다만 총론적인 언급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경허(鏡虚, 1846~1912)스님은 “저 세 가지 배움(계정혜 삼학-인용자)의 도를 닦지 않는다면, 행장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행장의 철학’을 남겼다. 그렇다면 우바이에게 적용 가능한 ‘행장의 철학’은 무엇일까? 나로서는 그 우바이가 자신의 가정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차원은 넘어서는 믿음과 활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본다. 불교 전체를 걱정하고, 중생들 전체를 염려하는 정도의 마음을 보여주고, 그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런 분으로 실상화 윤용숙(尹用淑, 1936~2016)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나눔불사’라고 이름할 수 있는 보살행의 실천을 겉으로 드러난 표층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글에서는 그러한 표층적 삶과 함께 그 심층(深層)에 놓여 있는 부분을 다소라도 살펴보고자 한다.

실상화의 생애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는 여성계, 불이회, 그리고 보덕학회라는 세 가지 범주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상화의 수희공덕과 감사회향(感謝廻向)의 불사는 이러한 조직을 통한 활동만으로 갇히지 않는다. 어쩌면 이 점까지 인식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매우 중요한 한 측면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적 차원의 보시바라밀이 더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불교연구원의 회지인 ‘구도(求道)’의 불기 2560(2016)년 11월호를 보면, 제일 뒷면에 ‘회비납부’라는 난이 있다. 한국불교연구원의 다양한 활동에 따라서 회비의 종류도 다양하다.

‘구도회비’ ‘연화회비’ ‘지장회비’ ‘이웃돕기(소년‧소녀)’ ‘불연사업후원회비’ ‘유마정사 인등비’ 등. 이들 회비는 각기 구좌 자체가 다른데, 이 중에서 지장회비를 제외한 모든 회비의 회비납부자 명단에 ‘윤용숙’이 다 있는 것 아닌가. 나로서는 다시 한 번 더 실상화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회비 납부의 시점에서이다. 2016년 10월16일 입적하였음을 생각하면 그 회비 납부는 바로 입적 직전의 일이었고, 막바지 투병을 하던 중의 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 회비를 다 챙기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뿐만 아니다. 실로 실상화의 개인적 차원의 회향불사 중에서 이러한 조직에 대한 개인회비의 납부 이외에 하나 더 있다. 이는 정말로 어떤 개인에게 배려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보시바라밀은 드러나 있는 두 가지 차원의 보시바라밀, 즉 불이회, 보덕학회와 함께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눔과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나눔과 구별되는 활동 중 의미 깊은 것을 체크해 보기로 하자.

첫째, 재가불교 운동에 깊은 관심과 참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불교연구원과 한국불교재가회의는 모두 근래 한국불교의 재가불교운동에서 나름의 위상을 차지하는 조직이었다. 물론,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실상화는 스님을 중심으로 하는 출가불교에 대해서도 공경심(恭敬心)과 공양심(供養心)을 잃지 않고 있다.

“수준 높은 현대인의 교육수준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출가하신 스님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던 터라 (불이상에-인용자) 출가면학분야도 포함시켰습니다.” “삼보호지(三寶護持)야말로 불자된 도리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본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도, 스님들의 사찰건축 등의 외형적인 불사를 돕는 것이 불교신도, 특히 그 대다수를 이루는 보살들의 신행이라는 고정관념이나 관습으로부터는 멀리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두고 다니는 사찰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불교계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출가불교만이 아니라 재가불교의 발전에도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둘째, 사회복지와 포교에 대한 관심이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수료하였고, 그러면서 동시에 포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우선 사회복지분야에 대해서는, 실상화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불이상’의 시상(施賞)에 있어서도 사회복지활동가가 많이 선정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실상화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횟수는 모두 21회인데, 이 중에 사회복지 활동가가 ‘실천분야’의 수상자로 선정된 경우는 모두 9회에 이른다.

다음으로 ‘포교사’에 대해서는 스스로 크게 드러내놓고, 포교사라고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실상화의 모든 활동이 불교를 수행하고, 불교를 전법한다는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넓은 뜻의 포교’에 해당한다고 보아서 좋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좁혀서 포교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실상화는 문서포교에 열을 쏟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서적의 법보시를 통해서이다. 불광출판사와 민족사에서 불교출판에 종사해 온 사기순은 불교서적의 “가장 훌륭한 독자이자 법보시자”로 실상화를 말하고 있다.

셋째, 우리 문화‧문화재에 대한 사랑이다. 이는 불이회의 창립 자체가 미술관과 박물관을 순례하던 길벗들의 화랑결의(畫廊結義)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995년 고속철도 경주통과 백지화운동과 같은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당시는 아직 권위주의 정권 아래가 아니었던가. 그것도 단순한 ‘동참자’는 아니었다. 당시 그 운동에 참여한 박광서 교수의 증언에 따른다면, 고속철도 경주통과 백지화 운동 자체가 실상화의 ‘제안’에 따른 일이었다. “이런 일에 지식인들이 가만있어서야 되겠는가”라고 분심(憤心)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실상화였다는 이야기다. 그런 분이니만큼, 우리 전통문화의 종합예술이라고 해도 좋은 한옥건축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전말을 ‘어머니가 지은 한옥’으로 정리‧보고한 것 역시 자연스런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상화의 삶과 실천행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스승들의 존재였다. 실상화가 마음 속 깊이 스승으로 모시면서 평생 의지하고 힘을 얻었던 분이 광덕(1927~1999)스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광덕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보현행원에 투철히 천착하면서 실상화의 나눔은 이제 단순한 선행이나 봉사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외면적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 선행 내지 봉사라는 평가는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선행도 맞고 봉사도 맞지만, 단순히 그러한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서 마침내 스스로 보리의 성취라고 하는 순환(循環), 즉 이타가 자리로 순환하고 다시 자리는 이타로 회향하는 ‘보현행적 순환’을 우리는 실상화의 삶과 나눔에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작고한 인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일이 된다. 스님들의 경우에는 행장을 짓고, 비문을 써서 비석을 세운다. 이러한 기초적 자료들은 마침내 승전(僧傳)의 형태로 전해지게 된다. 한편 재가의 우바새와 우바이에 대해서는 그러한 작업이 소홀했음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 더욱더 소홀했던 것은 우바이에 대해서이다. 이러한 반성 위에서 나는 우바이 실상화 윤용숙에 대한 입전(立傳)의 기초 자료를 정리해 보았다.

이것이 역사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해서 늘 의식하였던 분이 실상화이다. 남다른 역사의식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증거는 바로 평생에 걸쳐서 적어도 6권의 역사서를 편찬하거나 발간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실상화가 조직하였던 불이회와 보덕학회에서 각기 그 결사(結社)의 역사를 2번씩 편찬하였다.

불이회의 역사로서 ‘불이회 삼십년’과 ‘불이회 사십년’을 펴냈다. 특히 ‘불이회 사십년’을 받아보고서,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 단체가 결코 간단한 조직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가졌는데, 그것은 바로 1974년 7월20일(조자룡 : 민속민예의 범주 및 민속 일반)을 시작으로 2015년 6월17일(월호 스님 : ‘천수경’ 8강)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어떤 강의가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덕학회의 역사는 ‘보덕학회-창립 10주년’과 ‘보덕학회-창립 20주년’으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역사서에는 그 앞부분에서든 뒷자리에서든 다 실상화의 글이 실려 있다. 다섯 번째 역사서는 바로 ‘어머니가 지은 한옥-심원정사 창건기’이다. 이는 한 개인의 집짓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고, 한 가문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사든 가족사든 아니면 한옥문화사이든 그것이 역사적 기록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사찰이나 국가기관 같은 데서 어떤 사찰이나 문화재를 건축한 이후에 과연 보고서가 어떻게 정리되어서 전해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지은 한옥’은 그러한 역사적 정리를 위해서도 하나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증언을 통해서 들은 바 있을 뿐 나 역시도 직접 본 적은 없다. 바로 여성문제연구회에서 그 단체의 50년사를 발행한 바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상화의 권유로 여성문제연구회에도 참여하였던 정인숙(불이회 회원) 보살로부터 들은 내용이다.

실상화는 이렇게 여섯 번에 걸쳐서 역사서 편찬을 해냈다. 가히 ‘사가(史家)’라 해도 어폐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역사의식이 투철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왜 이토록 역사서 편찬에 관심을 갖고 힘을 기울였던 것일까?

그 일의 상속(相続)을 바랐기 때문이다. 불이회나 보덕학회의 경우, 그 조직의 첫걸음이 언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을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알려놓고 싶었던 것이다. 초심을 분명히 하고 그 역사적 전개의 흐름을 밝혀놓음으로써 미래에도 이러한 일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바로 그렇기에 역사서의 편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 김호성
동국대 교수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의 동기 역시 실상화의 역사편찬 의도와 결코 다르지 않다. 실상화의 삶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그 시대의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럴 때, 기억이 온전히 상속될 때 실상화가 염원했던 일, “보현행으로 보리이루고자” 했던 그 일들이 온전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화를 닮아서 그렇게 살아가는 우바이가 나타나고 선여인이 나타날 것이다. 아니, 우바새도 나타나고 선남자도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에게까지도 뭔가 호소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이다.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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