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6. 이슬람의 지옥

기자명 김성순

지옥서 죄업 다하면 천국행 가능

종교학 전공인 필자에게도 이슬람은 마치 심연처럼 함부로 재기 어려운 신앙이며, 특히 현대사회에서 워낙 복잡다단한 현상으로 종교성들을 드러내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얘기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단지 이슬람의 ‘지옥사상’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죽음은 끝 아닌 영혼의 시작
윤회 말하는 불교에 가까워
전장에서 도망하면 지옥행
테러 정당화에 이용 아쉬움

이슬람에서는 지옥을 ‘자한남(jahannam 혹은 나르nār)’으로 부르며, 단순히 징벌의 공간이 아니라, 생전에 죄로 인해 더럽혀진 영혼을 정화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극악의 죄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징벌 기간이 끝나면 지옥을 빠져나와 천국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이슬람의 지옥사상은 지옥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기독교보다는 죄업을 고통으로 보상하면 다시 윤회할 수 있다는 불교에 더 가깝다.

무슬림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살아가는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육체적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살아있을 때 겪었던 모든 경험들을 가지고 몸을 빠져나오게 된다. 죽음의 천사 아즈라엘(Azrael)은 각각 자비와 고통의 두 부류로 나뉘는 보좌천사들을 대동하고 죽은 자에게로 내려온다. 만약 죽은 자가 신실한 믿음과 선행의 삶을 살았다면 그 영혼이 자비의 천사에게 부드럽게 인도되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난폭하게 고통의 천사들에게 전달된다.

이슬람에는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영혼의 저장소 내지 대기처와 같은 ‘무덤 속의 삶’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장례식이 끝나면 시체 위에 떠있던 영혼은 천사에 의해 하늘로 인도되어 약식 심판을 받게 된다. 심판 이후 천국행 혹은 지옥행이 예정된 영혼들 모두 다시 땅으로 되돌아와서 현세와 내세의 중간적 삶을 살게 되는데, 이 ‘무덤 속 삶’을 불교의 ‘중유’에 해당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마침내 지구의 종말과 마지막 심판이 있게 되는 그 날, 심판이 끝나는 즉시 모든 영혼들은 지옥의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하여 씨라트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는 이들도 지옥의 구렁 위에 걸쳐져 있는 이 다리를 건너가면서 지옥과 죄값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다리를 건너가는 과정에서 천국으로 가게 될 이들은 가볍게, 빠르게 지나가지만, 지옥으로 가게 될 이들은 다리 위에서 바로 아래 불구덩이로 떨어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불교의 지옥 교설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내용이 또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옥에서는 화염 속에서 죄인들의 살이 녹아내리고 뼈가 타 없어질 때까지 소진될지라도 곧 다시 살과 뼈가 만들어져 계속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즉, 지옥에서는 물리적인 죽음이 불가하다는 교의가 이슬람의 지옥사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지옥은 천국과 같이 일곱 층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나쁘고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가장 낮은 나락층은 지옥 중의 지옥으로, 이곳만 유일하게 다시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 떨어지게 된다.

죄인들은 지옥에서 수없는 불기둥에 묶여서 뱀과 전갈들에게 계속 물어뜯기고, 불타는 송진으로 된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피고름, 내장을 녹일 만큼 뜨거운 물, 더러운 오물이 가득한 샘물, 악마의 머리처럼 생긴 가시 돋친 과일뿐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는 어떠한 행위를 지옥에 떨어지는 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으로 가장 먼저 종교적인 죄가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꾸란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무시한 자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언자에게 등을 돌리며, 무고한 이를 살해하고, 삶과 신앙에서 위선적이며, 비겁하게 전장에서 도망하는 행위, 그리고 지나친 탐욕, 오만, 거짓말, 속임수, 절도, 배신, 회개 없는 고집 등이 해당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비겁하게 전장에서 도망하는 행위’가 지옥에 떨어지는 죄가 된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바로 이러한 교의를 IS와 같은 이슬람의 외피를 한 테러조직들이 자신들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보게 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