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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김형길-하

기자명 법보신문

▲ 67, 묘각
야간 참선반을 맡아 진행해 보라는 제안에 아는 것을 많은 도반들과 나누는 기회가 되리라는 확신과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참석 인원이 적어 늘 마음이 쓰였고 안타깝기까지 했다. 오늘은 몇 명이나 올까 하는 마음 졸임과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내려놓는 나를 바라볼 수 있으니 이 또한 내 공부였다.

선어록 반복해 읽다 보니
제법 읽는 재미도 생겨나
삼라만상 실체 아니란 말
못 박듯 새겨가면서 공부

언제쯤 구하는 마음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부지런히 공부하고 닦아 나가는 방법 외에 쉽게 가는 길이 따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냥 열심히 할 뿐이다. 그동안 수행에서 얻은 것은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지금 여기에서 모든 행이 무상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체가 없음을 알고 나라고 할 것도 없으며, 믿음에는 조금의 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를 분명히 알고 매 순간 놓치지 않아야 ‘참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공부를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을 돌이켜보면 답답함 속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기초교리와 경전공부, 명상, 봉사활동 등 바탕 위에 참선수행을 하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참선부터 시작했다면 교리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수행의 가치 또한 깊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행 과정을 조목조목 점검하며 끊임없이 ‘참나’를 찾도록 이끌어주는 목종 스님과 만남은 가뭄에 단비였다. 야간 참선반 지도를 맡으면서 초심자에게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하는 이유는 스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향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태어나기 이전이니까 아무리 위로 올라가 봐도 실체가 없고 텅 비어 있다. 텅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비고 없는 가운데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있다. 시공을 벗어난 그 자리에 어떤 것에도 관여치 않으며 변함없이 허공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이 나이고, 그러므로 내가 주체이고 주인공이다. 객들이 수시로 문간을 드나들지만 문을 열고 잠금은 그 주체일 뿐이다. 그 주체가 바로 주인공이고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주인공인 ‘참나’라는 사실이다.

참선을 시작한 이후부터 인생이 참 즐겁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는 것도, 해우소를 가는 것도, 의도치 않게 누군가와 다투게 되더라도 매순간이 즐겁다. 목종 스님 말마따나 제행무상, 제법무아다. 이 가르침을 철저히 자신에게 붙이고, 삼라만상이 실체가 아니라는 말을 못 박듯이 새기며 공부를 이어가면 그 말씀이 사무치게 와 닿게 된다. 생사를 벗어나 육신에 마음 둠을 없애고, 내면을 알아차리고, 철저히 나 자신을 내쳐야 한다. 선사들은 텅 비고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초월하면 지금 여기 이 자리가 얻음이요 바로 내가 부처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나를 불교로 이끌어 준 ‘장경각’에서 나온 선어록을 지금도 종종 펼쳐 본다. ‘벽암록’ 같은 경우는 세 번째 펼치고 있다. 처음 읽을 때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니 두 번째 볼 때는 아주 조금, 세 번째인 지금은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제법 읽는 재미를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사실 공부는 공부일 뿐 마음과 행이 따로 될 때가 많다. 언제쯤이면 마음과 행이 같이 가려는지…. 분명한 것은 공부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기에 서툴지만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할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것이니 조금도 조급할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히 조급함을 느끼니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온다. 산책로에 흩날리던 붉고 노랗게 물든 낙엽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잿빛에 가까워져 마음을 알아차리게끔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오후 참선수행이 있습니다. 도반님들의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내 마음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어느 때보다 모임이 많은 12월의 금요일이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내며 야간 참선반의 문을 활짝 연다. 낙엽이 전하는 무상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말이다.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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