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방정환의 ‘잘 가거라! 열다섯 살아’
23. 방정환의 ‘잘 가거라! 열다섯 살아’
  • 신현득
  • 승인 2017.12.19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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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섣달 그믐날 깊은 밤에
지난해 살피고 새해 희망 꿈꾸는 시

이해가 마지막 가고 있다. 누구나 이때가 되면 지나간 한 해를 돌이키면서 그 해에 내가 한 일을 돌아보게 된다.

방정환 작품 추정되는 시 속에
그 시절 어린이들의 삶 드러나
쌓이는 눈 보며 한 해 정리하고
다음 해 설계하란 가르침 담겨


아동문학의 선구자 방정환 선생(1899~1931)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어떻게 했을까? 그 시대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방정환 작품으로 인정되는 동시 한 편을 살피면 그 시대의 어린이들이 섣달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동시 속에는 지난해의 자기를 살피면서 더 좋은 다음해의 설계를 하라는 가르침이 있기도 하다.

잘 가거라! 열다섯 살아

오늘이 그믐날
눈 오는 밤에
올 1년 일기를
내리읽으니

기쁘기도 하면서
섧기도 하다.
어린 나이 또 하나
없어지는 밤 
    
하얗게 오는 눈도
말이 없구나
아아 잘 가거라
눈길 위로

내 평생 다시 못 올
열다섯 살아. 

‘1925년 ‘어린이’송년호(제3권 12호)에서’

이 동시 작품은 민족지 ‘개벽(開闢)’에서, 자매지로 발행했던 ‘어린이’지의 1925년 송년호 권두시다.

지은이 이름이 없는 무기명 시였다. 당시의 잡지 권두시에는 무기명이 많았다. 한국 최초의 동시이며, 현대시로 알려진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도 최남선 지음으로 인정되지만 무기명이었다. 이 시도 잡지의 주간이 방정환이었고 이런 작품을 쓸 만한 다른 사람이 없었으므로, ‘방정환 전집’ 등에서 그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시작품에는 소년이 12월31일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지난 한 해를 돌이키고 있는 그림을 삽화로 하고 있다. 제목에 열다섯 살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는 오늘의 초등학교인 보통학교 학생들 나이가 많았음을 말한다. 마침 이날 밤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인공 학생은 1년 동안의 일기장을 모두 살핀다. 참 많은 공부를 하면서 많이 자랐다.

이것은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 해가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말없이 쌓이고 있는, 하얀 눈 위로 이 한 해가 아쉽게 간다.

“잘 가거라! 내 열다섯 살아” 하고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땡! 하는 괘종 소리를 따라 새해의 새 시간이 온다. 새 희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에는 지난해를 살피고 오는 해를 희망으로 맞으라는 소파(小波) 방정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문화 위인 소파 방정환은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899년, 19세기가 며칠밖에 남지 않은 11월9일에 서울 야주개 마을(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건어물과 미곡상을 하는 집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장돌(長乭)이었다.

방정환에 대한 연구가 없던 시대에 씌어진 교과서를 오늘까지 베껴 쓰고 있기 때문에 방정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잘못되고 있다. 방정환이 축소되고 와전되고 있는 것이다. 방정환은 개벽사의 자매지 ‘어린이’ 하나만을 엮어낸 편집장이 아니라 잡지왕국 개벽사를 이끌던 총책임자였다.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가 창작한 언어가 아니다. 우리나라 고대부터 있던 말이며(남광우, ‘고어사전’, 교학사), 근대에 와서는 육당 최남선이 소파의 1923년보다 15년 전인 1908년 ‘소년(少年)’창간호 70쪽에서 먼저 썼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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