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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혁안, 다시 논의해보자

역사공부를 해오면서 버리기 힘든 명제가 하나 있다. 바로 역사는 발전한다는 명제이다. 때로 역사는 정체, 혹은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해야만 하는 순간도 있지만, 우리 인류의 역사는 도도한 강물의 흐름처럼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분명 발전해나갈 것이다. 물론 역사는 일직선상으로 발전해오지 못했으며, 그냥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정의, 자유, 평등’ 우리 인류사회가 이러한 공동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그동안 치러왔던 희생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역사는 구성원들의 숱한 희생과 노력을 담보로 조금씩 발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 이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불교 1700여년의 역사는 발전해 왔는가? 한 두 마디 언사로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불교는 ‘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 포함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불교암흑기를 떠올린다면 오늘의 한국불교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라 하겠다.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불법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불교를 지켜왔던 조선시대 불자들의 희생과 공덕에 다시 한 번 찬탄의 예를 올리고 싶다. 

2017년 정유년이 저물어간다. 올 한해 역시 우리 사회와 불교계는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세밑의 감회는 물론 사람마다, 처한 상황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진행된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선거, 그리고 이 선거를 둘러싼 종단 갈등과 대립 양상은 세밑의 우리들 모두에게 씁쓸함이라는 공통의 감회를 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는 2021년, 조계종 승단은 또다시 총무원장 선거를 앞에 두고 똑같은 몸살을 앓아야만 할 것인가? 만약 조계종 승가구성원들이 이 시대 한국불교를 ‘발전’의 도상에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현 총무원장 제도는 반드시 그것도 시급하게 고쳐나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싶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종단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자리이다. 이로 인해 뜻있는 분들은 그동안 총무원장에게 부여된 이 절대 권한을 축소해야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왔다. 이른바 ‘교구본사 중심제’로의 전환이다. 물론 일부에서 예전에 비해 조계종 총무원장의 권력이 상당 부분 분산되었다는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총무원장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로 남아있으며, 그 결과 이른바 권승들이 지향하는 최고의 자리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조계종 승가구성원들 사이에서 사라진 현상이 하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시까지 수시로 제기되고 논의되었던 ‘불교개혁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자는 제도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견해를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권승, 범계승, 파계승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으며, 그들은 적어도 불교의 발전이라는 도도한 흐름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종권 장악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일부 권승들을 제외한다면 지금 이 순간 수행납자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고 계시는 스님들이 아직은 많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불법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꿋꿋하게 포교의 길을 가고 계신 전법승들도 많다. 이런 수행승과 전법승들이 종단과 한국불교의 주인공으로 모셔지는 ‘제도’를 만들어내는 일, 이것이야말로 조계종 승가의 ‘화급지사(火急之事)’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막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신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권력의 정점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순수한 봉사직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개혁을 꼭 이루어달라는 당부이다. 이러한 제도개혁은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새해, 한국불교가 다시 ‘발전’의 도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뗄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해 본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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