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조오현의 ‘인천만 낙조’
68. 조오현의 ‘인천만 낙조’
  • 김형중
  • 승인 2017.12.27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도에 떠밀려 살다 늙은 어부처럼
삶 현장에서 사라지는 죽음 읊은 시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때나 썰물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데.

문대통령 잠룡시절 SNS 화제
떨어져 지는 꽃도 아름답듯이
인천만 낙조 지는 모습도 장엄
인간 흥망성쇠·시간 상징 표현

오현 스님(1932~ 현재)의 ‘인천만 낙조’는 2016년 2월4일 문재인 대통령(당시 떠오르는 용 가운데서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 저울질할 때)이 당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시조이다.

“오현 스님의 한글 선시(禪詩)를 한 편 더 올립니다. 한글 선시가 이렇게 기막힌 줄을 오현 스님 시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선시라면 옛 조사나 도 높은 스님들의 아리송한 한시(漢詩)만 생각했습니다. 이 시도 시조입니다. ‘인천만 낙조’ -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문재인 후보는 이 시를 반기문 대세론과 안철수 대망론이 불을 피우는 상황에서 광주의 선택을 기다리는 초조한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시라고 생각했다. 3장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데”처럼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질 줄 모르는 순간, 광주의 선택은 죽은 줄만 알았던 그 늙은 어부를 그 다다음날 아침에 바다로 내보냈다. 드디어 아침에 인천만의 붉디붉은 해가 다시 힘차게 불끈 솟아올랐다. 

소동파의 시론(詩論)에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인천만 낙조’는 한 편의 동양화이다. 격정의 세파에 시달린 도시민의 중년신사가 해가 지는 인천 앞바다에 떨어지는 석양(夕陽), 낙조(落照)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현실의 모습을 노래한 시이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 한 때 찬란했던 모습을 회상하다 파도란 시간 속에 떠밀려 바다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무상한 삶이지만 한 때 붉게붉게 꽃피던 시절도 있었다. 장엄하게 붉은 빛을 발하면서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落照)를 바라보면서 영영 바다 속에 잠기는 해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시 아침이면 해가 솟아오른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넘어서는 현실주의자의 꿈과 상상이 만난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은 끝이요 단절이라고 생각하는 삶보다 다시 아름답게 태어나서 환생(還生)한다고 믿는다. 물론 죽음은 그 실체가 없어서 증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세계이다. 따라서 죽은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의 영역이고, 그들의 주관적인 생각(관념)이다. 나의 생각과 내 마음의 세계가 나의 삶과 나의 우주이다. 유심소현(唯心所現)이다.

이 시는 밀물과 썰물의 파도에 떠밀려 살아가는 고해(苦海) 인간이 그렇게 살다가 늙은 어부처럼 삶의 현장에서 사라지는 ‘죽음’을 읊은 것이다. 인생은 유한한 것이다.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 떠난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매일 노인정에 나오던 노인이 다음날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꽃은 떨어져 지는 것도 아름답듯이 인천만 낙조는 지는 모습도 장엄하고 아름답다.

3장으로 구성된 이 시조는 밀물과 썰물이 의미하는 인생의 흥망성쇠와 시간(세월)의 상징이 잘 표현되었고, 삶과 죽음, 현실과 꿈의 이중적인 은유가 모호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오현 스님 시의 특성은 한국의 가장 전통적인 문학인 시조의 형식(3장) 속에 자신의 구도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선시’를 담아서 ‘한글 선시’란 새로운 문학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깨달음의 울림을 주는 그의 심오한 선시는 현대시가 지향하는 추세로서 이정표가 되고, 많은 독자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고, 급기야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관들의 세속을 초탈한 오현 스님 시에 대한 애송은 대단하며, 한국의 계관시인 칭호를 추서할 만하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