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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버큰헤이드호 선원들의 명예

“우린 버큰헤이드호 훈련을 실시중입니다”

▲ 그림=근호

1852년 어느 날, 영국 해군 소속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6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바위와 충돌했다. 시간은 한밤중인 오전 2시, 그 배에는 630명의 사병들과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

바위 충돌로 난파된 버큰헤이드호
선장 지시 따라 부녀자 우선 구출
여자·아이 먼저 구출 전통 세워
진정 보살행 되려면 명예욕 버려야

아비규환의 대혼란이 일어났다. 넘어진 사람, 다친 사람, 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런 상태에서 배가 다시 한번 바위에 크게 부딪혔고, 선체 앞부분이 바닷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선미 쪽으로 몰려들었다.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고, 구조선의 정원은 60명이었다.

혼란 속에서도 선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은 침착했다. 그는 곧 모든 병사들을  갑판 위에 불러 모았다. 사병들은 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기울어진 갑판 위에 차렷 자세로 섰다. 먼저 부녀자 130명을 구명정으로 하선하게 했다.

마지막 구명정이 배에서 멀어질 때까지 사병들은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갑판 위에 장난감 병정처럼 서 있을 것이 요구되었다. 구명정에 탄 사람들은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마침내 버큰헤이드호 전체가 파도에 휩쓸려 침몰하기 직전, 선장은 병사들에게 이제 배에서 탈출해도 좋다고 선언했다.

그날 오후 구조선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 사고로 436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사령관 세튼 대령도 사망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배 위에 떠 있기 위해 필요한 판자 하나에 매달려 있었는데, 판자를 붙들지 못한 소년들에게 판자를 양보하고 자진하여 물속에 빠져 죽은 것이었다.

생명을 건진 몇 안 되는 군인인 존 우라이트 대위는 현장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병사들의 의연한 태도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움직였으며,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명령을 따르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그들은 마치 승선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선장의 지시대로 행동했다.”

버큰헤이드호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져 큰 감동을 주었다.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위험할 때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구조한다’는 전통이 확립되었다.

그 전통은 버큰헤이드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뒤, 영국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쉬호에서 처음으로 시험을 받았다. 아침 6시경, 배는 알제리아 해안에서 8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역을 지나고 있었다. 일출을 구경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 승객들은 갑자기 배가 튀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고, 거대한 굉음이 배의 중심부에서 들려왔다. 보일러실이 폭발했던 것이다.

불길은 사방으로 번져나갔고, 연기가 선체를 뒤덮었다. 배에는 전체를 지휘하는 선장과 군인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있었는데, 사령관인 로버트 스코트 대령이 메가폰을 잡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버큰헤이드호 훈련’을 실시중입니다. 누구든 갑판 위에서 움직이지 말고 구명정 지정을 받을 때까지 서서 기다려 주십시오.”

버큰헤이드호 훈련이 시작되었다. 군인들은 갑판 위에 정렬하여 부동자세를  취했고, 민간인 선원들 또한 자욱한 연기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서 있어야 했다. 담당 선원들에 의해 여자와 아이들이 구명정에 태워졌다. 대열에 서 있던 남편과 아버지들은 자신의 웃옷을 벗어 구명정 쪽으로 던져주었다.

여자와 아이들이 다 탄 상태에서 마지막 구명정에 빈 자리가 몇 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사관이 사령관에게 “어떤 순서로 태울까요?”라고 물었고, 사령관은 “물론 장례식 순서대로. 제일 젊은 사람부터!”라고 말했다. 이는 비상시에 적용해온 영국의 오래된 규칙이었다.

마지막 구명정이 가득 찬 상태에서 갑판 위에는 3백 명 가량의 군인과 선원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며 질서를 흩트리지 않았다. 윌슨 선장은 배 안을 돌아다니며 혹시 낙오된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선원들에게 나무통과 판자 등 물에 뜨는 물건을 모두 바다에 던지게 한 다음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상의와 구두를 벗고 바다로 뛰어내린다! 누구든 구명정 쪽으로 다가가서는 안된다!”

병사들이 먼저, 마지막으로 스코트 대령과 윌슨 선장이 배에서 탈출했다. 그들은 임시구명대 역할을 할 나무통과 판자 등에 몸을 의지한 채 물에 떠서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을 태운 안전한 구명정이 떠 있었지만 그쪽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시 15분경, 화물선 한 척이 수평선 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30분 뒤에는 또다른 배 3척이 구조를 위해 달려왔다. 10시 15분경, 마지막 생존자가 구출된 다음 점검해보니 폭발 당시 사망한 네 사람을 제하고는 단 한 사람의 인명손실도 없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욕망의 제어와 초월을 목표 삼으며 부처님께서는 욕망을 욕애, 유애, 무유애로 분별하셨다. 욕애는 감각적인 욕망을 의미하고, 유애는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물질적인 욕망을, 무유애는 존재하지 않고자 하는 욕망, 또는 명예욕 등 정신적인 욕망을 의미한다.

이로써 불교가 명예를 초월해야 하는 하찮은 것으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명예에는 그렇게 단순히 말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격권이 있고,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판을 높게 유지하고자 하는 명예욕은 인격권의 일부로서 법으로 보호받는다. 바꿔 말해서 해탈자에게 명예는 하찮은 것이지만 범부에게 그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매우 중요한 정신의 한 면이다.

명예가 가장 중요시되는 영역은 군대일 것이다. 군인들에게 명예는 곧 생명이다. 명예를 잃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정신으로 그들은 적과 두려움없이 싸우게 되며, 자신의 안위보다 전우 또는 타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버큰헤이드호 선원들은 그런 정신 자세로써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남들을 구했다. 그들이 이루어낸 결과는 보살의 그것이었지만, 그 동기는 범부의 명예욕이었던 것이다. 이 경우 불교인은 이들의 행위를 명예욕이라는 범부의 관점과 자발적 희생이라는 보살의 관점 중 어느 관점에서 보아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큰헤이드 호 선원들의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후자의 관점에서 그들의 일을 바라본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보살의 대비심 그 자체로서 죽어간 것일까를 묻는다면 우리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한두 마디 교리로써 설명해내기 어려울 만큼 미묘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말수를 줄이게 되고, 남의 잘잘못을 판단할 때 더한층 조심하게 된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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