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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역경·교육불사 거목 운허 스님

기자명 이병두

인재양성과 역경, 백년대계 수립하다

▲ 앞줄 가운데 운허 스님, 맨 오른쪽 덕산 이한상, 그 사이에 숭산 스님(불교종립학교 교직원수련회 기념, 1967년 1월12일, 직지사.)

“머리가 없으면 사람의 작용을 할 수 없음과 같이 정부가 없으면 국가의 작용을 할 수 없나니, 지난 10년 동안은 우리 국가의 작용이 잠깐 쉬었는지라. 따라서 정부도 없이 지내어 왔거니와 이미 원수의 굴레를 떠나 독립을 선언한 이상 국가의 작용을 하여야 할 것이며 국가의 작용을 하려면 정부가 없고는 될 수 없으니 외교로 보아서도 그러하고 내정으로 보아도 그러하고 정신의 통일로 보아도 더욱 그러한 것이다. … 바라건대 중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당국의 여러분들은 개인을 생각하지 말고 일을 생각하며, 형식을 생각하지 말고 실제를 생각하여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합하여 사업의 성공을 기약하여야 할 것이다."

1919년 만주서 독립운동 주도
이판사판 가릴것 없이 탁월해
1946년에 광동중학교 설립도
부처님 가르침 한글번역 초석

1919년 10월1일 만주 망명시절,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기관지인 ‘한족신보’의 사장과 주필을 겸하고 있던 운허 스님(당시 사용하던 이름은 이시열)이 ‘임시정부 개조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쓴 사설의 처음과 마지막 대목이다. 본디 스님의 본명은 이학수 였으나 중국 망명시절에는 이시열, 1921년 국내로 돌아와서는 일경의 추적을 피해 조우석‧김종봉‧박명하‧박용하 등의 가명을 사용하였다.

논지가 분명할 뿐 아니라, 100여년 전 한글로 쓴 글이 이처럼 깔끔한 문장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운허 스님이 입적에 이르기까지 경전 번역과 그 일을 맡아서 할 인재 양성에 큰 원력을 품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기본 바탕이 이미 젊은 시절에 탄탄하게 다져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1년 스님은 30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불문에 귀의하였지만 이판과 사판을 가릴 것 없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출가한 지 7년 밖에 안 되는 1928년 청담 스님과 함께 ‘전국강원학인대회’를 개최하여 승려교육 개혁을 이끌었고 1936년부터 봉선사에 홍법강원을 개설하였으며 1946년에 광동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처럼 스님이 남긴 발자취가 많았지만 오늘까지도 크고 넓고 깊은 울림으로 남는 일은 ‘부처님 가르침을 한글로’ 하는 역경과 교육 불사일 것이다.

“예전에는 국문이 없어 번역을 못했으니 한문으로 배웠지만 지금은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배우면 글 읽기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된다. 뜻만 알면 되지 않는가?”

스님이 밝힌 역경의 목적이다. 스님은 1952년부터 ‘능엄경’ ‘무량수경’ ‘범망경’ ‘유마힐경’ ‘화엄경’ ‘열반경’ ‘금광명경’ 등을 직접 번역하였으며 1964년 동국역경원 설립을 성사시켜 초대원장 소임을 맡아 ‘한글대장경’ 완간의 기초를 다지고 역경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로 법정‧무비‧지관‧월운 스님 등 현대 한국불교사에 손꼽히는 역경승은 모두 다 스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스님은 출가 이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1913~1914년 사이에 동창학교 교사, 1915~1918년 홍동학교 설립‧운영, 1918~1919년 배달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출가 이후에는 승려교육개혁에 매진하는 등 일생 동안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해방 뒤에는 광동중학교와 광동산림고(현 광동고) 설립을 주도하여 교장 소임을 맡아보면서 교사가 결근한 날에는 국어와 수학을 대신 가르친 적도 있다.

이 사진은 1965년 광동학원 제3대 이사장에서 물러나 역경원 일에 전념하던 스님이 1967년 1월12일 직지사에서 열린 ‘제2차 불교종립학교 교직원 수련회’에 동참한 숭산행원‧이한상(광동학원 제4대 이사장) 등과 함께 찍은 것이다. 70대 후반의 원로스님이 직접 수련회에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님이 종립학교 정착을 위해 애쓰던 정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의 은덕을 입은 봉선사와 광동학원 관계자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잇고 있는지, 아니 최소한 스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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