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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인생 삼백살을 발원합니다-중

“원력이 없으면 백년의 세월도 촌각에 불과합니다”

▲ 평생 인간불교를 발원하며 세계 곳곳에 포교도량과 대학, 의료복지기관을 설립해 온 대만 불광산의 성운대사가 합장하며 보살행을 기원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솔직히 말해서 사람이 팔순 고령이 되고나서야 한탄에 빠져야 하는 걸까요? 어찌하여 조금 더 일찍부터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아끼지 않을까요? 특히 지금의 노인층과 젊은이 사이에는 세대차이가 생겨나고 있는데 대체로 시대에 맞춰서 나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이 사상적으로 쉽게 낙오되고 있습니다. 인생 삼백 살은 항상 자신이 수고하면서 부지런히 만들어내야 합니다. "

성현을 따라 배우고 지혜와 정직함, 선량함으로 인과법을 굳게 믿고 생명의 잠재적인 능력까지 마음껏 발휘해 내면서 정신적인 사업에서 ‘삼백 살’이 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심지어 아미타부처님처럼 무량수를 살고 무량광을 비추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잠깐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서른 살’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삼백 살’의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오늘날 사람은 정상적으로 도대체 몇 살까지 살고 있을까요? 유엔 인구 통계국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일본인 84.2세, 호주인 82세, 독일인 80.3세, 미국인 78.6세, 중국인은 75세라고 합니다.

1957년 ‘장군(張群)’ 선생이 68세 생일잔치에서 “인생은 70부터 시작이다”라고 큰소리로 말하면서 “인생 70은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을 뒤집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 금, 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쌍둥이 할머니가 계셨는데 102세에 대만으로 관광을 오시기도 했었습니다. 불광산 양로원에 사셨던 ‘이일진(李逸塵)’ 여사는 청대 말기 대신 ‘이홍장’의 손녀로 106세까지 사셨습니다. 불광산 이란에 위치한 무료양로원 인애의 집에 계신 ‘허선욱(許蟬旭)’ 어르신은 113세까지 사셨는데 제가 찾아뵈었을 때 우리들에게 노래와 춤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장수할까요? 신장자치구 ‘위그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곧 130세가 되는 백세인이 세계 최고령 장수노인으로 인증을 받았고 동네 마을에는 백세가 넘는 노인이 많이 계신다고 합니다. 

예전에 대만 통일기업 창립자 오수제 거사는 매년 생일을 불광산에서 지냈습니다. 70세가 되었을 때 오거사는 원력을 세우고서 “만약 80세까지 살 수 있으면 타이난에 있는 땅을 불광산에 기증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 80세 생일연에서 오거사는 정말 타이난의 농지를 불광산에 기증하였고 저에게 “90세까지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빈승은 부처님께서 선한 사람을 보살펴 주셔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특별히 재미있는 ‘타유시(打油詩 : 통속적이며 해학적인 시. 역자 주)를 지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인생 60십을 갑자(甲子)라고 하는데
진정한 세월은 70부터서야 시작이지
80 이더라도 아직 애들이라 함은
90 노인이 많고 많으며
백 살 인물도 드물지 않음이지.
신수(神秀)는 102살이었지만
불도징(佛圖澄, 232~348년) 대사가 큰형님이 되시네.
다문제일 아난타는 꼬박 120살을 살았고
조주(趙州)와 허운(虛雲)은 합쳐서 240세를 사셨으며
보리유지는 156세이셨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무량수인데
생명의 마라톤에서
누가 오래 사나봅시다.”

오거사는 2005년에 93세 고령으로 왕생하셨으니 원하는 바를 성취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에서 수명에는 단계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시계처럼 한시에서부터 12시가 되었다가 다시 12시에서 1시가 되는 것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돌아가는 것이 육도순회인 것으로 생명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 모두가 다 무량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이 팔순 고령이 되고나서야 한탄에 빠져야 하는 걸까요? 어찌하여 조금 더 일찍부터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아끼지 않을까요? 특히 지금의 노인층과 젊은이 사이에는 세대차이가 생겨나고 있는데 대체로 시대에 맞춰서 나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이 사상적으로 쉽게 낙오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법륜을 굴린다(轉法輪)”라고 하는 말은 끊임없이 앞으로 구르면서 움직이고 나아간다는 것으로,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빈승은 네 살 노인이 되지 말고 “삼백 살의 인생을 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수시로 자신을 경각시키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류 생명의 가치는 70, 80세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의 경우는 단지 30세를 살았지만 그의 선덕(善德)과 현명함에 대한 칭송은 천고에 전해져오고 있지 않습니까? 승조(僧肇)대사도 단지 31세를 살았지만 대사의 ‘조론(肇論)’은 천년이 넘도록 중국불교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신해혁명(辛亥革命)에 부응하고 ‘홍헌제’로 자칭하는 ‘원세개(袁世凱)’에 반대하는 세력을 발동하여 죽어가던 나라를 되살렸던 호국대장군 ‘채송파(蔡松坡)’도 단지 34세를 살았을 뿐입니다.

사실 불교에서 젊은 불교를 선도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31세에 이미 깨달음을 증득하고 성도하여 진리를 널리 펼치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과거 깨달으신 많은 선사들도 모두가 아주 젊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육조 혜능대사는 26세에 도를 깨달으셨으며 현장 대사도 서역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셨을 때 단지 20대였습니다. 또한 남해보타산 불정사(佛頂寺)는 사미가 개산조사였기에 “사미 조사가 총림을 창건하였다”라는 미담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속담에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상관없으며 뜻이 없는 사람은 헛되게 백 년을 보낸다(有志不在年高 無志空活百歲)“라고 하였습니다.

황제에 등극하게 된 어린아이가 용상에서 울고 있는데 그 아래 모여선 대신들은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외치면서 절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 만대로 이어지는 왕조가 있었습니까? 사람들은 ‘만세’라고 불리기를 바라지만 사실 이 ‘만세’라는 명칭은 ‘전국책(戰國策)’에서 초왕(楚王)이 “과인의 만세천추 이후에 누가 이를 함께 즐거워하겠는가?(寡人萬歲千秋之後 誰與樂此矣?)”라고 했던 것처럼 사람의 죽음도 ‘만세 이후’라고 말합니다.

수명에는 흔히들 말하는 연월로 말하는 수명이 있고 언론적인 수명, 사상적 수명, 사업적 수명, 문자적인 수명, 공덕의 수명, 도덕적 수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와 맹자, 부처님 같은 경우는 도덕사상적인 수명이고 안회, 승조, 현장 스님 같은 경우는 지혜공덕의 수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색신으로 길고 짧음을 비교하거나 따지지 말고 다른 방면에서 길거나 잠깐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영향력이 깊고 유구한지와 대중에 이로움이 되었는지가 우리들이 중시하는 수명이어야 합니다. 중국 옛 어른들이 말하는 삼불후(三不朽:영원히 썩지 않는 세 가지)로 입덕(立德 : 덕행을 쌓고) 입공(立功 : 공을 세우고) 입언(立言 : 이치를 전하는 가르침을 남기는 것)이 바로 무량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옛 기억을 되돌아보면 빈승은 불학원을 떠난 20세 이후로 사회 대중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면서 평생 휴가를 모르고 살아왔는데 연말휴가나 여름, 겨울 휴가라고 가본 적이 없으며 주말이나 휴일에는 남들보다 더 바쁘게 지냈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는 시간 없이 교실, 강당, 체육관에서 홍법활동을 하면서 대중을 이롭게 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길을 걷거나 수업이 끝나는 막간이나 자동차, 기차, 고속철, 비행기에서조차도 업무를 보고 원고를 읽고 책을 읽었습니다. 날마다 저는 분초를 다투고 꼼꼼하게 따지고 세밀하게 계획하며 지냈습니다. 만약 다섯 사람이 하는 일을 하루에 할 수 있다면 80세가 되었을 때 사람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수 명이 60년이 있으므로 60 곱하기 5를 하면 300살이 된다고 빈승 스스로 다짐한 적 있습니다. 지금 빈승이 90세가 되었으니 70년 동안 저는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인생 삼백 살’의 이상을 실현하였습니다. 삼백 살은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요령을 부려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수고하면서 부지런히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남들이 하루에 원고지 5장 10장을 쓴다면 저는 어려서부터 매일 원고지 50장 100장을 쓸 수 있도록 저 스스로를 단련시켰습니다. 손님과 식사를 하는 이외에 제가 밥을 먹는 시간은 보통 5분이고 많아야 10분 정도인데 왜 그럴까요? 시간을 아껴서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서 신문을 보아도 신문 한 부를 보는데 1~2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대략 3분에서 5분이면 다 봅니다. 또 예를 들어 책을 보더라도 몇 달에 걸려서 책 한권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대략 하루에 여러 권의 책을 보기도 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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