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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가장 힘 센 사람 되기 [끝]

기자명 김용규

용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힘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시간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단단하고 뾰족한 모든 물질들마저 무상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시간이니까요. 세월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붉거나 푸르거나 샛노랗던 모든 욕망을 속절없이 무력화시켜 흙으로 되돌립니다. 시간이라는 그 무한궤도의 열차는 모든 육중한 산맥의 예리한 능선과 거기에 박힌 화강암과 금강석 따위의 단단한 모서리마저 무뎌지게 만들어냅니다. 고저장단(高低長短)의 사연과 경과만 있을 뿐 모두를 흐트러뜨려 마침내 부드러워지게 합니다. 과학은 그것을 엔트로피의 법칙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생존 필요한 힘 기르기 위한 선택
새해에는 용서하는 능력 키우길

불교의 깨달음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그 시간이라는 열차 위에 업의 인과를 따라 올려진 존재들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 열차 위에 까닭도 모른 채 올라타서는 저마다 사연 많은 나날을 살다가 문득 내려지는 것! 그것이 한 생애의 시(始)요 과정(過程)이며 종(終)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 생애의 始와 終은 힘센 하늘의 운행이 이끄는 일이고, 나약한 인간인 우리는 다만 살아 있는 그 과정의 순간순간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 인간에게 삶의 순간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것마저 하늘의 운행이 절대적 지배권을 갖는다면 누군가에게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나 무료한 것이거나 끔찍한 것, 혹은 불공평한 것이겠습니까?

시종을 제외하고, 삶의 과정에 대해서만은 각자에게 선택의 자율권이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우리 각자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한 선택을 해왔던가요? 오늘로 2년간 격주로 이 귀한 지면을 할애 받아 써오던 글의 마지막 글을 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조금 묵직한 질문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 삶의 순간순간을 선택해 왔나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간 그 선택의 지향이 너무도 단순했습니다. 특히 고도성장이 최대의 명제였던 우리사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먹고사는 것을 절대적 숙제로 여겨온 한국의 사회경제적 체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 선택의 방향이 지극히 참담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더 강력한 소비능력을 갖추기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했습니까? 무엇을 위해 그 직장과 그 일을 선택했습니까? 인간으로서 추구하고 누릴 충만하고 숭고한 삶,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정신적·영적 차원의 삶을 위해 그렇게 해왔습니까, 아니면 그저 더 확실하게 먹고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습니까? 냉정하게 살펴보면 대다수의 우리는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힘, 생존하는 데 필요한 힘을 갖기 위한 선택으로 삶을 채운 날이 많습니다. 더 풍부한 소비능력을 갖춘 사람이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은 우리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황폐하게 만듭니다.

이제 새로운 힘을 갖는 선택을 말하려 합니다. 숲의 세계도 인간의 세상도 모두 욕망이 있어 존재합니다. 욕망이 제거된 존재들에게 선택은 없습니다. 돌멩이가 그렇고 죽은 나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욕망은 살아있음의 증거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생물에게는 딴 생명들과는 다른 특별한 욕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내면 깊숙한 곳에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발현하지 못하고 사는 까닭은 세상이 험해서, 그리고 그 세상에 각성 없이 찌들어 사느라 그 욕망을 놓치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요? 생각건대 그건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의 상태나 수준과 무관합니다. 그가 용서받을만하건 그렇지 못하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의 상태와 수준을 함께 아파하는 힘이 생겨야 가능한 일이 용서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힘입니다. 소비능력을 갖는 것이 인간 최고의 힘이 아닙니다. 새해에는 더 많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 되기를 욕망하고 선택하며 살 수 있기를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간의 인연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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