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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부처를 만났을 때, 어떻게 죽여야 합니까?-하[끝]

부처 머리는 없다 오직 자신 머리만 있을 뿐

▲ ‘부처, 본래면목의 자리’ 고윤숙 화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던 것은 임제였지만, 그런 얘기를 한 것이 임제만은 아니었다. 부처를 만날 때마다 죽일 줄 알아야 진정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럴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실은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게 부처임을 알기에 그럴 수 있었을 게다.

선사들 학인들에게 서슴없이 목 내놓아
부처 죽일 자는 부처 죽일 필요 없는 자
남의 머리 아닌 스스로에게 부처를 봐야

이런 것이 선승이니, 그들 자신 또한 부처와 ‘조사’를 겨눈 학인의 칼에 죽기를 주저하지 않는 분들일 것이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말은, 학인들에게 자신을 죽이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니 말이다. 하여 그들은 목을 치러오는 학인들에게 서슴없이 목을 내놓는다. 여기선 덕산선감(德山宣鑑)과 그의 제자들이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먼저 덕산. 덕산에 머물던 용아(龍牙)가 의심이 일어났는지 덕산에게 이렇게 물었다.

“학인이 막야(鏌耶) 보검을 들고서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막야 보검은 오나라의 유명한 대장장이 간장(干將)이 만든 두 개의 보검 중 하나고, 막야는 그의 아내의 이름이다. 용아 자신이 덕산의 머리를 베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덕산은 목을 쑥 빼며 “얏!”하고 소리를 질렀다. 목을 치라고 내 준 것이다. 그러자 용아가 말했다.

“스님의 머리는 떨어졌습니다.”

그 말을 듣고 덕산은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수긍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유명한 몽둥이질을 하지 않은 걸 보면 그저 부인한 것만은 아니라 할 것이다. 나중에 용아가 이 얘기를 동산(洞山)에게 하자 동산이 말하였다.

“덕산이 당시에 무어라고 말하던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가 말이 없던 것은 그만 두고, 떨어진 덕산 스님의 머리를 내게 가져와보게.”

용아는 이 말에 완전히 깨닫고 향을 사르면서 멀리 덕산에게 절을 올리며 참회하였다.

덕산의 제자 암두(巖頭)와 설봉(雪峯)에게도 비슷한 공안이 있다. 암두가 자신을 참방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는가?”
“서경(西京)에서 왔습니다.”
“황소(黃巢)가 지나간 뒤 칼을 주웠느냐?”

서경은 당의 서쪽 수도 장안이다. 황소는 ‘황소의 난’으로 한때 당의 수도 장안을 점령하여 황제의 자리를 얻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친구 왕선지가 일으킨 반란에 동조하며 난의 중심인물이 되었는데, 길에서 ‘천사황소(天賜黃巢)’, 즉 하늘이 황소를 내렸다는 글씨가 새겨진 칼을 줍게 되어 확신을 갖고 반란을 밀고가게 되었다고 한다. 황소가 지나간 뒤 칼을 주웠느냐는 말은 황소처럼 하늘이 내린 칼을 주웠느냐는 말이다. 용아가 말한 막야 보검이 그렇듯 그 칼은 천하를 얻는 칼이 아니라 번뇌와 생사를 잘라버릴 칼을 말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스님은 대답한다.

“주웠습니다.”

그러자 암두는 목을 그의 앞으로 쑤욱 빼면서 “얏!” 하고 소리를 질렀다. 머리를 베면 어쩌겠냐고 묻기도 전에 덕산이 했던 것처럼 머리를 쑤욱 내밀고 어찌 하려나 본 것이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다. 그 스님이 말했다.

“스님의 머리가 떨어져버렸습니다.”

전에 용아가 덕산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대답이다. 용아처럼 이 스님 역시 암두의 시험에 걸려든 것이다. 그러자 암두는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 전에 덕산은 말없이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는데, 암두는 왜 껄껄 대고 웃었을까? 덕산의 공안을 알기에 우리는 최소한 이 웃음이 저 스님의 답을 그저 긍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원오는 “그의 웃음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떤 독기가 서려 있다는 것일까? ‘목이 떨어졌다는데 이 웃음은 뭔 웃음인고?’ 물으려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이 스님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 못했고, 암두의 웃음에 서린 독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반대로 암두가 웃음으로 자신을 인정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여 나중에 설봉에게 갔을 때, 암두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설봉은 서른 방망이를 쳐서 그 스님을 쫓아내버렸다. 원오는 심지어 서른 방망이론 모자란다며 아침엔 3천 방망이, 저녁엔 8백 방망이를 쳐야 했다고 착어(著語)를 단다. 왜 그랬을까?

덕산도 암두도 자신의 목을 서슴없이 내준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대로, 자신의 목을 내놓곤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학인을 시험하기 위해 던지는 물음이다. 무엇을 시험하려는 것인가? 부처나 조사를 머리를 쳐서 가져갈 만한 물건인가를 시험하려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고 가라고 했지만, 그들은 아무에게나 머리를 내주지 않는다. 줘봐야 가져가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부처나 조사를 죽이는 것은 그럴 능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못한 채 칼을 휘두르면 부처도 조사도 죽이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자유자재로 어떤 궁지에서도 어느새 빠져나가는 게 부처고 조사 아닌가!

선사나 스승을 넘어설 능력도 없이 “머리가 떨어져버렸습니다”라고 해봐야 멀쩡한 생사람이나 잡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머리를 서슴없이 내주는 것은 내주는 방식으로 죽이러 온 이를 붙들고 그의 머리를 치는 놀라운 주객전도의 칼질인 셈이다. 암두를 참방한 스님도, 덕산에게 물었던 용아도 모두 그 번개 같은 칼질에 당한 줄도 모르는 채 머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껄껄대고 크게 웃어준 것은 천하의 부처를 죽이고 조사의 머리를 가져가겠다는 패기를 살려주고자 함이었을 게다. 덕산이 말없이 방장실로 돌아간 것도 그렇다. ‘사람을 죽이고 살림이 자재롭다’ 함은 바로 이런 경우라 하겠다.

앞서 용아는 스스로 막야 보검을 들고 왔지만 암두는 자신에게 물은 스님에게 슬그머니 칼을 쥐어 준다. 그 스님은 황소의 칼을 받아든다. 그러나 사실 그걸 받아든 순간부터 그의 견처는 드러나 버린다. 부처의 머리를 얻는데 보검은 필요 없다. 아니 사실 보검으로 쳐서 가져가야 할 것이 있다면, 그는 아직 부처나 조사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에게서 부처를, 본래면목의 자리를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았다면 남의 머리를 쳐서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따라서 “스님 머리가 떨어져 버렸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의 머리를 가져갈 수 있는 자는 이미 부처의 머리를 갖고 있는 자, 자신이 그 머리를 갖고 있음을 아는 자뿐이다. 보검으로 덕산의 머리를 잘랐다는 용아에게 동산이 물은 것도 그것이다. 잘라왔다면 그 머리를 내놓아보라고. 내놓을 머리가 없으니, 그는 머리를 잘랐다고 했지만 가져가지 못한 것이다. 동산의 질문으로 인해 비로소 용아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자기 머리뿐임을 깨달았던 것이고, 그때 덕산에게 죽었던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역설이 출현한다. 부처를 죽일 수 있는 자는 부처를 죽일 필요가 없는 자 뿐이다. 부처를 죽여 머리를 얻을 수 있는 자는 부처를 죽일 필요가 없음을 아는 자 뿐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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