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현장은 다양한 삶 배우는 학교”
“봉사현장은 다양한 삶 배우는 학교”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8.01.03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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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의료봉사 20년 여오숙

▲ 2014년에는 현장 경험을 녹여낸 ‘외국인근로자의 의료신뢰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에 지체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불교계에서 만든 의료봉사단체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활동하면서 의료봉사에 동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봉사단체는 기독교계였다. ‘불교계에는 왜 봉사단체가 없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침 의료회 위치도 직장 근처인 봉은사였다. 여기다 싶었다. 그렇게 1999년 처음 선재마을의료회와 인연을 맺었다. 출범한지 5개월도 안되었던 선재마을의료회가 내년이면 꼭 20년이다. 그 세월을 보냈으니 청춘을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회장이라는 직함도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자원봉사자다.

선재마을의료회 창립 소식에
자원봉사 신청으로 인연 시작
“봉사라는 생각 잊은지 오래
병원서 보지 못한 세상 배워”


선재마을의료회는 IMF경제위기 직후인 1999년 5월 서울대의대불교학생회, 서울대치대불교학생회, 서울대총불교학생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 4개 불교단체가 모여 출범했다. 봉은사 경내에 컨테이너박스를 진료소 삼아 시작했다. 한때 의료봉사 동참 회원이 300여명에 달했고 서울과 인근에 두 곳의 진료소를 더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봉은사진료소만 운영하고 있다. 20여년 세월에 이런저런 부침도 많았지만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선재마을의료회 봉사현장을 지킨 여오숙 부회장에게는 이제 봉사라는 이름도 거추장스런 치장일 뿐이다.

▲ 시설관리, 서류업무에 간호봉사까지. 그는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다.

주야가 수시로 바뀌는 병원 근무만으로도 벅찬데 매주 휴일만 되면 의료봉사를 하러 나가는 딸을 어머니는 탐탁치 않게 여겼다. “절에는 부처님오신날이나 가고 봉사는 가끔 한 번씩 하면 된다”며 말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스님이셨던 친정아버지의 깊은 불연이 딸에게까지 이어질까, 혹시 저러다 출가라도 하는 건 아닐까하는 어머니의 남모를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 알리없는 딸은 매주 진료소를 찾았다. 서울 인근에서 찾아온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줄이 늘 길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도, 다쳐도 병원조차 맘 편히 찾아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선재마을의료회의 진료소는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다. 세 번이나 이사를 하고, 때로는 혼자 이사짐을 옮기면서도 진료소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지난 2014년엔 컨테이너박스 진료소에서 벗어나 봉은사 향적원 지하에 자리를 마련하고 진료, 치료 시설들도 새로 구비했다. 그 사이 봉사자들도 체계를 잡아 이제 간호봉사는 ‘후배’ 봉사자들의 몫이 되었다. 비영리민간단체로 활동하다보니 제약업체나 의료기관, 정부부처 등과의 연계활동과 서류작업 등이 그의 주 업무가 되었다. 하지만 약속된 봉사자가 갑작스럽게 오지 못하는 등 ‘펑크’가 나는 날이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봉사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어요. 그보다는 인생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평생 간호사로 병원 수술실만 오가며 살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다양한 삶을 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삶을 배웠다고 하는 편이 맞아요. 인생학교라고 할까요. 그리고 불자의료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2014년 ‘외국인근로자의 의료신뢰도와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의 의료환경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정책이 무엇인지를 현장에서 찾은 결과다.

“불교는 수행을 하는 종교잖아요. 누구나 자신만의 수행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불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사를 통해 삶을 배웠다고 강조하는 그의 웃음에선 나누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묻어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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