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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내게 주는 선물입니다”

  • 상생
  • 입력 2018.01.03 17:26
  • 수정 2018.01.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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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이웃 쌀나눔 25년 박경임

 
“이 세상에 배고픈 이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밥을 조금 먹어도 좋으니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제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소녀시절 불우이웃구제 발원
‘자비의집’봉사로 나눔 인연
사찰 찾아다니며 쌀 기부받아
지속적 후원자들 생겨나기도

8살 어린 소녀의 발원을 부처님은 잊지 않으셨다. 그 소녀는 25년째 노원구 불우이웃에게 쌀을 보시하고 장학금까지 나눠주고 있다. 노원구 독거노인들의 딸로 알려진 선행화 박경임(63)씨가 도와준 사람들을 세어보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는 절대 밝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심부름꾼이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전북 주안군 줄포가 고향인 그는 어릴적 동네 거지들을 보며 ‘이 사람들을 다 구제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발원했다. 동네 나그네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집에 들여 밥을 먹이고 재워줬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고운 심성의 소녀는 커서 부처님을 만났고 신심 깊은 청신녀가 돼 주변 이웃에게 보시행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보시행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관련 자비나눔 활동을 하려 알아보고 있었으나 당시 불교에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에 불교계 최초 무료급식소 ‘자비의 집’ 개원 소식이 들려왔다. 여기가 내가 봉사할 곳이라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찾아갔다. 인연은 ‘불교자원봉사연합회’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그는 노원구 복지교화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사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데 쌀을 후원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쌀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쌀 보시가 많이 들어오는 사찰에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박씨의 쌀 보시가 시작됐다. 노원구 불우이웃에게 쌀이 필요하면 노원구에 있는 사찰에, 중계동 이웃이면 중계동 사찰에 찾아가 스님들께 사정을 이야기 했다. 사전 연락없이 찾아가 쌀을 부탁 했는데도 한번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부처님이 도와주시는구나’ 생각하며 더 열심히 했다. 쌀을 준다고 하는 곳이 여럿 생겼고 집으로 쌀이 배달이 오기도 했다. 쌀뿐만이 아니었다. 고추장, 된장 등 먹거리와 생활용품도 쌓여갔다. 정기적인 후원자도 생겼다. 특히 동국대 석림회 스님들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매달 후원해주고 있다. 박씨는 스님들께 받은 돈은 따로 초·중·고등학생과 노인, 장애자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매달 쌀과 후원금을 나누고 나면 후원자들에게 쌀 나눔 문자를 보내며 감사하단 말을 잊지 않는다.

후원금 조성에 톡톡한 역할을 한 숨은 일꾼도 있다. 바로 박씨의 재봉틀 ‘보시틀’이다. 재봉기술이 있는 그는 동네 사람들 옷을 무료로 수선해줬다. 옷 수선을 하며 자연스레 손님들의 고민상담을 하게 됐고 그를 찾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루는 부녀회장이 찾아와 “우리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일정 정도 수고비를 받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옷수선 간판을 주고 갔다. 간판을 달고 수선비를 받으며 손님들의 옷과 마음을 수선해주는 박씨의 집은 법당과 같았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도 편안하게 들어와 그와 상담을 한 후 불교를 다시 보게 됐다는 말도 남겼다. 그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선비 거스름 돈을 안 받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박씨는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 쌀나눔하는데 보탰다.

매달 22~30일은 그동안 모인 쌀을 배달하는 날이다. 손수레를 끌고 쌀배달 가는 박씨의 마음은 해가 지날수록 발원으로 가득 차오른다.

“밥을 먹으면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듯 보시할 때 다른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동체대비를 보시행에서 체험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체득하는 기쁨이 있어 또 감사해지지요”

어디를 가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길 바라는 박씨의 마음은 어릴 적 소녀의 발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구제하고 싶었던 그 소녀는 이제 보시할 대상이 있어 감사하다는 넉넉한 보살이 되어 세상을 품고 있었다.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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