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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집착 놓고 ‘우리’로 함께 사는 세상 구현하는 첫 걸음

  • 상생
  • 입력 2018.01.03 17:54
  • 수정 2018.01.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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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왜 보시인가

▲ 부처님 자비사상에 기반한 보시는 오늘날 불교사회복지 이념의 근간이 되고 있다. 각급 단체와 사찰·불자들의 보시가 절망에 빠진 이웃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우리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과 과도하게 일찍 맞게 된 퇴직, 그리고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급격하게 다가선 고령화 사회는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임에도 생활고로 고통 받는 이들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연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치솟는 집값과 물가에 좌절하고, 다른 한쪽에선 표정관리 할 겨를도 없이 웃음부터 나오게 하는 빈부격차 역시 그 차이를 더하고 있다. 그로인해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듯한 모습의 현대인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우리’라는 마음 씀이나, ‘공동체’적 사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많은 경전서 보시 공덕 찬탄
자비사상 바탕 삶 지향점 제시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의 끈

보시는 내 것이란 아상의 뿌리
뽑아내는 생활 속 방하착 수행

불교의 보시 강조는 나눔 장려
사회적 불평등 해소 노력 일환

계층간 심리적 단절 복원하고
사회구성원 융합 시너지효과
이 시대 상생·소통 근원 될 것

그럼에도 이 사회는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말하고, 지금보다는 밝은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 말한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요즈음 같은 시절엔 너도 나도 한번쯤 주변을 둘러보는 마음을 내면서 “우리같이 힘을 내자”고 내남을 아울러 다독이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절망과 어둠속에서도 이처럼 꿈꾸게 하고 있는 것일까? 그 꿈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보시’, 즉 기부다. 제도권에서 시행하는 정책으로, 혹은 사회적 시스템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일반의 십시일반 보시가 상당부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곧 내일을 향한 희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2017년 한해 세상을 시끄럽게 한 몇몇 기부금 비리 사건이 보시문화 확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지만, 보시를 통해 나와 남을 분리하지 않고 공동체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는 만큼 사회적 불안 요소 역시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곧 이 시대에 불교의 자비사상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교의 보시 문화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와 헤어진 후 숲에서 만난 청년 야사에게 전한 첫마디는 “보시를 실천하고 계율을 준수하면 하늘에 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 “보시행은 현생에서나 미래생에서 행복을 얻는 원인이며, 열반의 기쁨을 얻는 원인이다. 보시행은 인간과 천상인에게 모든 종류의 즐거움을 얻는 으뜸가는 원인”이라고 했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이후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편안함을 주고자 하는 자비사상의 근간이 되었고, 오늘날 불교사회복지의 실천지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교에서 이타의 극치로 표현하며 강조하고 있는 보시는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수많은 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증일아함경’에서 재시·법시·무외시를 설한 것을 비롯해 ‘별역잡아함경’에서 재시와 공익사업을, ‘아비달마집이문족론’에서도 보시의 대상과 물품을 설한다. 또 ‘잡보장경’에서는 무재칠시를, ‘금광명경’에서는 법시를, ‘화엄경’에서는 무외시를 설하고 있다.

“제어하기 어려운 인색한 마음을 제어하여 재물을 풀되 꿈과 같이 하고 뜬구름같이 해야 한다. 보시하는 집착이 없는 마음을 키울 때, 이로 인해 지혜가 완성된다.(‘화엄경’)” “보시가 보살의 정토다. 보살이 성불할 때, 온갖 것을 능히 베푼 중생이 그 나라에 태어난다.(‘유마경’)”

경전에서는 이처럼 보시의 공덕을 찬탄하면서, 출가자처럼 전문적인 수행이 어렵다면 선행을 베풀고 공덕을 쌓는 것도 훌륭한 수행이 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형편이 어려워 직접 보시를 행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남이 보시를 행할 때에 수희심(隨喜心)을 일으켜야 한다. 수희하는 복보(福報)는 보시와 매한가지여서 다를 것이 없는 까닭이다.(‘인과경’)”라며 마음으로 함께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여러 경전에서 보시를 강조하는 것은,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공동체적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며, 나아가 수행적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보시의 수행적 측면이 강조된 가르침은 ‘금강경’의 “수보리야, 보살은 현상에 집착 없이 보시해야 한다. 만약 보살이 어떤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한다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복덕은 광대하고 무량하다”는 대목에 집약돼 있다.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특히 보시바라밀은 단순하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밝아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베풀고 베풀어 보시바라밀의 씨앗을 심어 놓으면 보시바라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지혜를 밝힐 수 있다. 이처럼 보시바라밀의 실천은 내 것이라는 아상을 타파하는 ‘방하착 수행’이 된다. 보시가 곧 수행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듯 보시바라밀은 아상의 뿌리를 뽑아내게 하는 방하착의 생활 속 실천이다. 작은 보시의 생활화가 곧 실생활의 수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보시 공덕 강조는 무엇보다 나눔을 장려하고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래서 보시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자원이라 할 수 있다. 국가 제도와 시스템만으로 해결 불가능한 다양한 문제들을 공익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시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살리는 역할을 함으로써, 개인이 갖는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다.

물론, 보시가 불평등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거나 사회적 불안 요소를 완벽하게 불식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보시가 필요한 이유는 ‘나’라는 집착을 놓는 출발점이 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할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시가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놓인 물질적·정신적 간극을 줄이지 못할지라도, 계층간 심리적 단절을 복원해 이어줌으로써 상호 오해와 부정적 감정을 줄이고 사회 구성원들을 융합시키는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보시가 이 시대 상생과 소통의 근원이 되는 셈이다.

“보시를 할 때는 평등한 마음으로 해야 하나니, 가장 천한 거지에게 보시할 때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때 분별심을 내지 말고, 대비심을 가지며,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하되 어떤 과보를 바라지 않고 보시하라”는 ‘유마경’ 가르침 등을 배우고 가르쳐온 불교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 곳곳의 어둠을 밝히려 노력하고 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의 행복바라미 캠페인을 비롯해 로터스월드·정토회 등의 제3세계 지원, 일일시호일의 이주노동자 및 다문화가정 지원 등 각급 기관의 활동은 물론 사찰과 신행단체를 중심으로 한 보시활동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보시는 이처럼 종교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자비실천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도 개인적 부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행동이며 더 없이 아름다운 가치관임에 분명하다. 불자들이 나와 남을 동시에 이롭게 하고자 하는 중생구제의 큰 원을 세우고 정진하는 보살의 마음을 새겨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사회도 정토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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