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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넘치고 화끈한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명상’

  • 새해특집
  • 입력 2018.01.03 18:22
  • 수정 2018.01.03 18:35
  • 댓글 3

힐리언스선마을 촌장 ‘국민의사’ 이시형 박사

▲ ‘국민의사’로 불리는 이시형 박사는 힐리언스선마을과 세로토닌문화원을 중심으로 자연치유에 기초한 예방의학과 생활습관을 바꾸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수탈에 신음하던 1934년 소년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조국해방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열 살 남짓에 광복을 맞이했지만 철이 들기도 전 마주한 세상은 전쟁, 그리고 전후의 폐허뿐이었다.

‘화병’ 의학용어 등재 시킨
정신의학자로 명성 얻었지만
40대 중반에 허리디스크 고생
자연치유 중심 예방의학 관심

2007년 힐리언스선마을 개원
명상 중심 프로그램 운영하며
신경조절호르몬 세로토닌 강조

대학시절 방학 때 홍제암 찾아
스님생활·참선 접한 것이 계기

‘…전쟁이 휩쓸고 간 거리, 추위와 굶주림에 고픈 배를 움켜잡고서 어지럽고 메스꺼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가판대에 놓여 있는 헌 책 한권이 겨우 눈에 들어온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는 앉은 채로 읽어내려갔다. 전율과 감동으로 몸서리치며 번쩍 정신이 든다. ‘아, 그래도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은가.’ 널브러져 앉은 내 꼴이 부끄러워서 벌떡 일어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옮긴이 서문에서.

소년은 10여년 후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원을 거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의학계의 권위자, 뇌과학자가 되었다. 바로 이시형(84) 박사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와 문장은 수없이 많지만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정신의학 용어로 등재시킨 의사’라는 설명일 것이다. ‘국민의사’라는 애칭이 따라다니지만 40대 중반 허리디스크와 퇴행성관절염에 시달렸다. ‘의사가 내 몸 하나도 관리 못하고.’ 수술 대신 자연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치병’ 위주의 현대의학으로는 병을 예방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연의학은 힐리언스선마을(2007년 개원) 촌장, 세로토닌문화원 원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주었다. 그렇게 ‘병원 없는 사회를 꿈꾸는 의사’가 된 이시형 박사는 벌써 8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 이시형 박사의 서재. 다양한 집필활동으로 현대사회에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힐리언스선마을이 문을 연지 10년이 지났다. 성과를 평가하면.
지난 10년간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중간보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힐리언스선마을(이하 선마을)을 거쳐 간 체험자의 82%가 선마을에서 제시한 생활지침에 따라 생활습관을 고쳤다는 결과다. 선마을은 생활습관을 고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곳이다. 의학은 병을 고치는 응급의학과 병을 예방하는 예방의학의 두 갈래가 있다. 선마을은 예방의학 쪽이다.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생활습관을 고치고 숲이 갖고 있는 치유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는 세계 최초의 도전이고 의미있는 성과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숲이 갖고 있는 치유력을 인지하게 된 계기는.
숲에 가면 누구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과학적으로 왜 그런지 모를 때에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숲이 갖는 치유효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 지고 있다. 산에서 치유효과를 얻은 사람들의 경험도 많이 확인되고 있다. 나 역시 체험을 통해 얻은 부분이 많다. 의과대학을 다닐 때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해인사 홍제암 신도였다. 덕분에 방학 때마다 자주 홍제암에 가서 지내곤 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면서 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때 본 스님들의 모습과 기억도 나에게 중요한 경험이 됐다. 자연의학, 명상, 숲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다.

▲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나.
어려서 어머니 따라 절에 가보았지만 깊은 이해가 있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홍제암에서 생활할 때는 스님들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젊은 스님들도 많아서 교류할 기회도 있었다. 불교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사찰의 문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스님들의 권유로 ‘육조단경’을 읽어봤고, 최근에는 ‘금경경’ 읽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있어서 ‘금강경’에 대해서도 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학자이고 지식인의 입장에서 불교를 접할 뿐이다.


▲그럼에도 선마을 프로그램에는 불교적 색체가 강하다.
선마을 프로그램의 중심이 명상이고, 명상의 많은 부분이 불교에서 출발한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명상의 효과에 대해 과학적 증명이 이뤄지고 있다. 명상이 현대화된, 과학적인 치유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명상에 대해 ‘동양의 신비가 아니라 증명된 과학’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과학적 효과 입증 이전부터 선마을에는 명상 관련 프로그램이 도입된 것 같다.
스님들처럼 수행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뒷전에 앉아서 따라해 봤던 것이 소중한 경험이 됐다. 요즘도 틈틈이 명상을 하는데 특히 아침마다 짧지만 10분이라도 명상을 한다. 병원에서 환자를 볼 때에도 틈틈이 호흡을 조절하거나 다음 환자를 보기 전에 잠시 평상심을 찾을 수 있도록 명상 시간을 갖곤 했다. 이런 개인적인 체험이 선마을에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로토닌운동을 제안한 것도 같은 의미인가.
세로토닌 호르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절이다.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조절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독 역시 참지 못하는 것,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로토닌 결핍이다. 아이들의 경우 수면, 공부도 조절이 안 된다. 공부도 평상심이 유지돼야 가능한 것이다. 스마트폰 중독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인터넷이나 도박, 술, 담배, 마약 중독 역시 결국엔 세로토닌 부족으로 인한 현상이다. 현대 문명의 위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범국민명상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예일대나 하버드, 엠아이티 등의 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달라이라마를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명상의 효과에 대해 연구도 했다. 나 역시 그들의 보고서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스님들의 참선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상은 세로토닌을 분비시키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격정적이고 동적이고 폭발적이다. 무엇을 하든 화끈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의 성격은 명상하고는 맞지 않는다.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명상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명상이 필요한 사람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이다. 그래서 명상운동도 펼치고 강연도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현대인에 맞는 명상이란 무엇인가.
참선과는 다른 형식이 필요하다. 10여개국의 외국 대사들과 함께 백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백담사 계곡에서 자연명상을 했는데 폭포 앞이나 큰 나무 아래 앉아서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내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잠시 멈추고 온 몸의 감각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스님들이 하는 것처럼 벽을 보고 앉아 화두를 잡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환경을 바꿔주었더니 다들 쉽게 따라했다. 신발을 벗고 걸으면서 대지를 느껴보는 것도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밝은 햇빛을 받으면서 리드미컬하게 걷고 움직이는 과정 모두가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키는 작용이다. 그 형식이 참선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좀 더 생활과 가깝게 명상하는 방법이다.

 

고통도 삶의 일부…자<慈>와 비<悲>가 조화 이룰 때 인생이 건강해진다


생로병사 이어지는 인생서
긍정·행복만 강조해서는
진정한 건강의 의미 놓쳐

많은 생명과 인연들 속에서
우리 삶은 ‘살려지고’ 있어
모든 것에 감사·감동하면
긍정파동 연쇄작용 불러와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현대 종교는 크고 화려해져
부처님 겉모습은 초라했지만
그 삶이 보인 가르침 기억해야

▲ 즐겁고, 신나고, 열정적으로 사는 것만이 건강의 비결은 아니다. 그것만이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든의 고개를 넘겨 자비의 참뜻을 깨달았다”는 이시형 박사가 감사운동을 펼치는 이유다.

▲건강의 비결로 ‘100% 활동’을 꼽았다. 명상을 강조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느껴진다.
요즘 사회는 즐겁고 신나는 것만 추구한다. 즐겁게,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것도 인생의 일부분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를 베풀어라’는 말에 대해 오랫 동안 의문이 있었다. 자(慈)를 베풀라는 뜻은 알겠는데 비(悲), 왜 슬픔을 베풀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니 슬픔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만약 말기암 환자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빨리 나아서 한잔 하자’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 본인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안다. 그럴 때는 가만히 앉아서 그와 슬픔을 함께해야 한다.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 자비라는 생각이 든다. 자비의 원어를 찾아보니 자(慈)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마이트리(maitr?)는 ‘벗’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미트라(mitra)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비(悲)는 산스크리트어 카루나(karun?)로 공감, 동정, 연민, 함께 슬퍼함 등을 의미했다. 그것을 중국 사람들이 왜 비(悲)라고 표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슬픔이라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니 그 자체가 괴로운 것이며 그것도 인생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100% 인생이라는 제안 속에는 바로 이러한 자비에 대한 생각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긍정과 행복, 열정으로만 살자는 뜻이 아니다. 실패, 좌절도 하고 때로는 나락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다. 절망을 해본 사람만이 희망을 알고 불행해본 사람만이 행복을 안다. 배고파 본 사람만이 밥 먹고 난 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100% 인생이다.


▲정신건강과 종교의 관계는.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는 삶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큰 힘에 의해서 내가 살려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을 종교에서는 부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인디언들은 그것을 ‘위대한 무엇(Something Great)’이라고도 표현한다.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 우리가 살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그 힘이 있다면 그것을 종교적 차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새롭게 시작하는 운동이 감사, 감동 운동이다. 사과 하나가 내 손에 오기까지 거쳐 온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그 속에 담긴 생명들의 도움을 생각하고 절실히 느끼게 되면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렇게 되면 사과 하나에도 감동하게 된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삶을 돌아보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품성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예외 없이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감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을 일으킨다. 그것이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감사를 하게 되면 감사의 파동이 일고, 그것이 공명을 일으켜 더 큰 파동으로 내게 돌아오게 된다. 작은 것을 베풀면 더 큰 것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면 감동하게 되고 그러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같은 식당을 가도 어떤 사람은 식당의 서비스가 나쁘다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를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뭐라도 서비스를 더 받게 되는 것이다. 간단한 원리다. 앞으로의 세로토닌운동 역시 감사와 감동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명상보다 더 쉬운 방법을 제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생활습관 고치기보다 마음습관 고치기가 더 어렵지 않나.
물론 가치관이나 철학이 중요하다. 내가 사기를 쳐서라도 부자가 되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 어떤 운동도 소용이 없다.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나서 힘든 것도 있지만 이보다 더 나쁜 세상, 나쁜 시대도 많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시대가 좋은 점도 많다. 그런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가치관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감사, 감동, 행복이 따를 수 없다.

▲ 이시형 박사는 몇 해 전부터 문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한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자 시작한 그 나름의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김양수 화백은 그의 그림에 대해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있어 불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부처님은 초라한 사람이었다. 극심한 고행으로 야위어서 갈비뼈가 앙상했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평생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적인 삶을 살다 돌아가셨다. 그런 부처님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는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교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종교는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화려하다. 물론 그런 시설들이 종교적인 심성을 자극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일단은 절에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매일 오가야 하는 스님들이나 신도들에게는 편리한 시설이겠지만 절은 걸어서 가는 곳이다.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햇빛을 받고 몸을 움직여 걸어가면서 조금 숨이 가빠질 때 즈음 만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의학적으로 보면 세로토닌이 활성화되는 과정이고 명상하기에,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신체 조건이 만들어지는 조건이다. 선마을로 올라가는 길도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차가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오는 길을 조성했다. 그 길에 ‘세심로’라고 이름을 붙였다. 마음을 비우고 올라오라는 뜻이다. 모든 종교의 수행시설이 산에,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걸어서 가는 곳. 득도라는 것이 결국은 그 과정을 말하는 것 아닌가.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감사, 감동, 행복을 화두로 모두가 건강한 삶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감사는 긍정의 파동이다. 긍정의 파동이 있는 동안은 부정의 파동이 있을 수 없다. 더 많이 감사하고 그를 통해서 더 많이 감동하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사진=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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