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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다면불(多面佛) 서경수 교수

기자명 이병두

근대 불교개혁 견인 재가 선지식

▲ 1966년 8월 25일, 대불련 구도부원들이 용맹정진했던 김룡사에서. 왼쪽부터 서경수 교수, 성철·숭산 스님, 덕산 이한상 거사, 박성배 교수.

“종교가 너무 정치권력과 밀착되면 권력의 시기를 받든지 아니면 정치권력과 함께 부패될 위험이 있다. 세속적 권위 집단인 정치권과 세속을 초월한 교단권 사이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세속적 영예나 명성이나 향락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는 출가한 수행자들의 집단이 승가다. 따라서 승가의 권위는 세속적, 정치적 권위를 넘어선 지위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불교 교단 즉 승가는 세속적 정치권력집단과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구태 벗고 사회참여해야”
‘불교계에 바란다’ 큰 반향
중학생 때 항일운동 옥고
성철 등 큰스님과 인재양성

이 글은 1980년 봄, 고 혜안 서경수 교수(이하 ‘혜안’)가 한국 불교계에 첫째 ‘과거 지향적 성향에서 벗어나라’, 둘째 ‘정치와 불교의 관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눈을 가져달라’, 셋째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해 달라’는 세 가지 주문을 하면서 쓴 ‘불교계에 바란다’는 글의 한 대목이다.(월간 ‘법륜’ 1980년 5월호 수록) 이 글이 발표된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치욕스런 ‘10‧27법난’을 당하게 되었으니 법호 그대로 그에게는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慧眼)이 있었던 것일까.

혜안의 제자 이민용은 “연구실에 파묻혀 계신가 하면 선방에 앉아 계셨고 우리와 산사를 찾는 등반길에 계셨고 또 술집에서 파안대소하며 두주불사하기도 하였던 그를 가리켜 다면불(多面佛)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가 하는 평범한 말, 풍자가 가득한 말들은 '매섭게 사태를 꿰뚫어서 선어록에 수록될 정도로 후학과 제자들에게 늘 “선적(禪的) 긴장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민용은 그가 선사들의 행적을 정리하면서 썼던 ‘기상(奇想)의 질문과 천외(天外)의 답변’이라는 표현을 스승인 혜안에게 다시 바친다.

“북녘 날씨가 몹시 싸늘하던 초겨울 해질 무렵, 난데없이 일본인 정복 경관 세 명이 학교에 나타났다. 한 마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내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순간 하늘이 캄캄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길이 끊어졌다.”

고향 함경북도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항일운동에 연루되어 끌려가 6개월 동안 수감된 일을 20년이 지나 이처럼 담담히 회고하지만 이 사건은 그가 불교학으로 다가가게 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혜안은 해방 뒤 종교학‧인도철학· 불교학 연구와 강의에 몰입한다. 그러나 제자 이민용이 회고하듯이 그는 연구실에만 머무는 서생이 아니었다. ‘대한불교’(현 불교신문)의 주필로 ‘불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글’을 쓰고 삼보학회 간사를 맡아 ‘한국불교 100년사’ 편찬을 주도하였으며 대불련 지도교수로 수련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 보살폈고 이기영과 함께 한국불교연구원을 창설하여 믿음과 실천을 겸비한 불교학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86년 비운의 교통사고를 당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사람 복이 많았다. 늘 든든한 후원자이며 동지였던 덕산 이한상이 있었고 학문과 신행에서 서로를 아껴주는 이기영과 박성배가 있었으며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제자들이 있었고 그와 함께 젊은 인재들을 다듬는 일에 마음을 내어준 성철‧숭산‧광덕 스님이 있었다. 1966년 8월 25일 대불련 구도부원들과 ‘21일 용맹정진’을 했던 김룡사에서 성철‧숭산 스님, 이한상 거사, 박성배 교수와 함께 찍은 이 사진 한 장이 그 사람의 복을 증명해 줄 것이다.

긴 수염과 너털웃음이 상징이었던 그였지만 필요할 때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삼보장학생으로 뽑힌 학생 하나가 건강문제로 법회에 참석 못하는 사정을 몰랐던 장학회 이사장이 “장학금을 주지 말라”고 하자 “선발 시험을 거쳐 뽑힌 학생인데 그럴 수 없다”면서 신문사 주필 사직서를 냈던 숨은 일화가 그 사례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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