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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유아독존 vs 유아독악

“내가 부처인데 성불할 수 없다니요?”

▲ 일본 정토교 확산에 크게 기여한 신란 스님 진영.

불교인들은 정토를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왔습니다. 이 세상을 정토로 만들자는 차방정토설, 다른 곳에 정토세계가 있으니 다음 생에는 그곳에 가고 싶다는 타방정토설 그리고, 우리의 청정한 마음 그 자체야말로 정토라고 보는 유심정토설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정토설은 서로 서로 결합하여 공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선불교 ‘이뭣고’란 화두 의미는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
나 혹은 부처는 누구인가 강조

선의 인간관은 긍정적으로 규정
정토불교 “불성 있을까” 절망적
야나기 무네요시 유아독악 말해
“죄악 많아 생사 거듭하는 범부”

유심정토설은 선불교의 입장에서 내세우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선불교 역시 타방정토설을 수용했습니다. 현세에서는 유심정토를 추구하고 내세에는 타방정토에 가기를 희망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선정쌍수(禪淨雙修)라고 합니다. 선정쌍수는 선불교의 입장에서 정토불교를 수용하여 공존을 모색한 결과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토불교의 입장에서는 선불교를 수용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정토설이 존재하는 것이나 선불교와 정토불교의 입장이 다른 것이나 심지어는 같은 선불교 안에서도 수행법이 달라지는 이유들은 모두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전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특수로서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 맥락은 불교만이 아닙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불교도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부처는 누구인가? 이렇게 말입니다. 이때 ‘누구인가’를 ‘무엇인가’로 바꾸어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묻습니다. 그 유명한 화두 ‘이뭣고(是甚?)’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심마’는 중국어로 ‘션머’입니다. 무엇, 어찌 그런 뜻입니다.

자 선불교의 입장에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누구인가요? 이러한 물음에 대한 정답은 바로 ‘부처’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불교입니다. 자기가 부처임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 선이고 깨닫고 보니 이미 옛날부터 부처였음을 아는 것이 선입니다. 이를 석가모니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나서는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나 홀로 존귀하다”라고 하셨다 합니다.

유아독존(唯我獨尊)입니다. 물론 이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이 존귀하고 다른 모든 중생들은 그분만큼 존귀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다 나를 숭배하고 의지하라 이런 뜻이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우리 중생들 모두가 다 그렇게 존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부처님은 그것을 깨쳐서 알 수 있었고 중생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선의 인간관은 인간을 희망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긍정주의라고 할 수 있고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중에서 지금 “나는 부처다” 이렇게 확신하고 나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선 수행을 해서 깨침을 얻었다고 하는 분들 중에서는 그럴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그렇게 많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은 부처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본질적으로’ 부처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인간의 모습은 속모습(性)과 겉모습(相)으로 분열됩니다.

“원래 속으로 볼 때 인간은 부처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번뇌에 덮여있다. 죄업을 짓고 있다. 그런 현실적 모습은 중생이 아닐 수 없다.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본래부처임을 깨닫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중생의 모습은 오래도록 닦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바로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이론이 그런 것입니다. 돈오는 부처를 깨닫는 것이지만 그런 뒤에도 중생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점수가 필요하다는 이론입니다. 돈오점수설은 이상적 인간의 모습과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균형있게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선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을 성찰할 때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관점 역시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있게 됩니다. 아무리 본래적인 입장에서라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들에게 선한 구석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불성 같은 것을 과연 갖고 있었다면 어찌 그런 죄와 악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절망합니다.

인간에게는 선(善)이란 것은 조금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악 뿐이라는 관점입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否定的)입니다. 비관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너무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다 보니 도저히 우리 스스로의 자력으로는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된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참으로 나 자신은 나쁜 놈이고 어리석은 인간이고 범부일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착하고 훌륭하고 수행도 많이 하셨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요. 단박에 돈오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나만은 유아독존(唯我獨尊)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관 내지 자기관(自己觀)을 갖고서 출현한 것이 바로 정토불교입니다.

그런 점을 ‘나무아미타불’의 저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유아독악(唯我獨惡)’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유아독존이 100점이라면 유아독악은 0점입니다. 100점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도 성불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0점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성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정토가(淨土家)들은 늘 스스로가 부족하고 스스로가 어리석고 스스로가 나쁘다고 말하게 됩니다. 당나라 선도(善導) 대사 같은 분이 우선 떠오르는 분입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죄악이 많아서 생사를 거듭하는 범부이니, 한량없는 겁 이전부터 항상 죽고 항상 윤회해 왔으나 그것을 벗어날 인연이 없다.”(‘나무아미타불’ 160~161쪽)

이는 시(詩)입니다. 참회의 시이자 고백의 시입니다. 이런 분은 선도대사만이 아닙니다. 선도대사의 영향을 누구보다 크게 받은 호넨(法然) 스님은 물론 호넨 스님의 제자 신란(親鸞) 스님에게도 이러한 자기 고백은 많습니다. 신란 스님의 경우는 더욱더 처절한 고백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진실로 알겠구나 어리석은 구도쿠(愚禿, 어리석은 까까머리) 신란은 슬프게도 애욕의 넓은 바다에 빠졌으며 명리의 큰 산에서 헤매면서 정정취의 무리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진실한 깨달음에 가까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네. 부끄럽고 슬프도다.”(‘교행신증’) 이렇게 스스로 부족하고 악하고 어리석다는 자각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구원이 불가능하다고 자각하면 할수록 정토불교의 입장에서는 선불교의 유심정토설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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