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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위문후의 넓은 마음

“승전은 주군께서 저를 믿어주신 덕분입니다”

▲ 그림=육순호

위문후가 중산을 치고 싶어하자 책황이 악양을 천거했다. 문제는 악양의 아들이 중산에서 벼슬을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들이 일제히 악양에게 병권을 맡기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책황이 말했다.

책황 천거 위문후 군대장된 악양
반대 극심했지만 그를 신뢰한 왕
악양 5만대군으로 중산군과 대치
아들 적진에 있어도 공격해 승리

“악양은 아들로부터 중산에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중산군이 무도하다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주군께서 그를 쓰시면 꼭 성공할 것입니다.”

문후는 그 건의를 받아들여 악양을 대장으로 삼았다. 악양은 5만의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중산군과 대치했다. 그는 중산군이 산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불을 지름으로써 적진을 혼란시켜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중산자는 성안으로 피한 다음 악양의 아들 악서를 불러 말했다.

“네가 적을 물러가게 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

악서는 성루에 올라가 아버지에게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사정했고, 악양은 한 달 동안 군을 움직이지 않을 테니 그동안 중산자를 설득해 항복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산자는 한 달이 지나도록 항복하지 않았다. 악양은 다시 한 달의 여유를 더 주었다. 이런 식으로 세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중산자는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선봉장 서문표가 악양에게 물었다.

“장군께서는 왜 여러 달 동안이나 성을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까?”

악양이 대답했다.

“중산군이 백성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성을 공격하게 되었소. 그렇지만 만일 너무 급히 공격하면 성안의 백성들이 상하게 될 것이오. 세 번이나 저들의 말을 들어주었는데도 저들이 불복한 이상 이제 우리가 성을 공격해도 백성들은 우리의 공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오.”

한편 문후 주변에는 악양이 중산군과 대치한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성을 얻지 못하자 참소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악양이 중산을 친 다음 본국을 역공할 것이라는 둥, 중산을 얻으면 절반은 자기가 가질 것이라는 둥 하며 그의 면직을 주청했는데, 문후는 그 상소문들을 궤짝 안에 모아 두었다.

마침내 악양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악양의 군대가 맹렬하게 공격하자 위기에 몰린 중산자는 악서를 높은 장대에 매달아 성루에 세워 놓고 악양을 협박했다. 악서가 외쳤다.

“아버지!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악양은 아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너는 남을 위해 벼슬을 살면서 주인으로 하여금 승전케 하지 못했다. 또 내가 네 주인을 설득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찌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악양은 아들을 향하여 활을 겨누었고, 중산 사람들은 곧 악서를 죽였다. 그들은 악서의 죽은 몸으로 국을 끓여 머리와 함께 악양에게 보내어 악양의 기세를 꺾으려 했다. 악양은 아들의 머리를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무도한 임금을 섬겼으니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고는 사신이 보는 앞에서 국을 모두 마신 다음 사신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일갈했다.

“너의 임금이 보낸 선물은 잘 받았다. 이 선물에 대해서는 성을 깨뜨리는 날 대면하여 답례할 예정이다. 우리에게도 고기를 삶는 가마솥이 있다. 그 솥이 너의 임금을 기다리고 있다.”

사신은 혼비백산하여 물러갔다.

대장의 결심이 단호하다는 것을 알게 된 악양의 병사들은 치열하게 중산을 공격했다. 마침내 중산이 악양의 손에 떨어졌고, 중산자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

악양이 승전하여 돌아오자 문후는 큰 잔치를 베풀었다. 문후는 직접 술을 따라 악양에게 권했는데, 악양의 얼굴에는 전승자로서의 자만하는 빛이 있었다.

문후는 좌우에 명하여 궤짝 두 개를 가져오게 한 다음 그것을 악양에게 선물했다. 단단히 봉해져 있는 궤짝을 집으로 가져가며 악양이 혼자 생각했다.

‘이 속에는 금은보화가 들어 있을 것이다. 임금께서 군신들이 시기할까 염려하여 궤짝을 봉해서 하사한 게 분명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가 집에 도착해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자기를 모함하는 상소문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악양은 놀라고 감탄하여 이튿날 문후 앞에 엎드려 아뢰었다.

“중산의 승전은 순전히 안에서 주군께서 저를 믿어 주신 때문이었습니다. 신의 공로래야 주군의 믿음 위에 약간의 노력을 보탠 정도에 불과합니다.”

문후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있어도 내가 아니면 등용하지 못했을 것이요, 내가 있어도 그대가 아니면 임무를 다하지 못했을 것이오. 장군은 노고가 많았소. 마땅히 봉작을 받아야 하오.”

문후는 그에게 영수라는 땅을 주어 영수군이라 칭하게 하고, 그에 더해 상으로 많은 보배를 하사했다.


말은 귀로 들어오고 입으로 나간다. 귀로 들어오는 말 중에는 달콤한 것과 쓴 것이 있으며, 사람들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고 쓴 것을 싫어한다. 달콤한 설탕을 과하게 섭취하면 몸에 나쁜 것처럼 달콤한 말 또한 너무 즐기면 마음에 나쁘다. 하지만 나쁜 줄 알면서 설탕을 즐기는 사람처럼 나쁜 줄 알면서도 달콤한 말에 현혹되는 것이 중생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설탕과자를 손에 든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높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곧 금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며, 그를 찾아간 사람은 짧은 면담 시간을 금쪽처럼 써야만 한다. 그 시간에 힘 가진 사람을 설득하여 자신에게 이익 된 결정을 얻어내야만 한다.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 같은 말을 해줄 시간은 없다. 당장에 입에 달콤한 말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형편인 것이다.

전국 초기의 명군으로 꼽히는 사람답게 위문후는 군주된 자가 빠지기 쉬운 달콤한 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악양을 참소하는 자들은 상소문을 바치면서 자신들의 본의가 주군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위문후는 굳이 그들을 꾸짖지는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질투하거나 무지하다. 내가 현명하면 그뿐이다”인 것이다.

깊고 멀게 보는 사람으로서 그는 상소문이 가득 담긴 궤짝을 악양에게 선물한다. 그렇다. 조직이 큰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담당자의 능력과 함께 지도자의 신임이 꼭 필요하다. 불교가 마음의 종교이고, 마음은 넓을수록 좋다는 점에서 세상 모든 지도자는 불교를 배우고 닦을 필요가 있다. 전국시대 중국에는 불교가 없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위문후는 불교 수행자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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