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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삶 강요 말라

기자명 이병두

인간은 서로 다른 성격과 능력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 비슷한 능력을 타고 났어도 가정환경과 교육 정도,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의 성향에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지리산‧설악산을 최고로 여기는 이들은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집에서 가까운 낮은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 산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하듯이.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똑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강요하지 않고 각자 근기에 따라 살아가게 도와주는 것이 정상적인 시민들이 할 일이다.

탐구정신을 타고 난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자나 사상가의 길을 가고, 정의감에 넘쳐서 세상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운동가나 투사의 길을 가며, 축구‧농구‧배구에 소질을 타고 난 사람은 각자 특기에 맞는 선수의 길을 가고, 소진(蘇秦)이나 장량(張良)처럼 외교 책략과 윗사람을 보좌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책략가와 참모의 길을 가면 된다.

재(財)보시와 재능 기부를 하는 사람과 법(法)보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듯이,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대중을 지도‧지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보다 앞장서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각기 성격과 능력에 맞게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것이 옳다. 이처럼 각자 자기 그릇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정해주는 세상이 정토(淨土)일지 모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뛰어난 제자들도 각기 지혜제일 사리불, 신통제일 목건련, 다문(多聞)제일 아난, 두타(頭陀)제일 가섭, 설법제일 부루나, 천안(天眼)제일 아나율, 지계(持戒)제일 우파리, 해공(解空)제일 수보리, 밀행(密行)제일 라후라, 논의(論議)제일 가전연 존자 등으로 자신의 특성에 맞는 전문분야가 있었다. 부처님이 라후라에게 “왜 사리불처럼 지혜에 뛰어난 수행자가 못 되느냐?”고 질책하고, 반대로 사리불에게 “왜 라후라처럼 남모르게 좋은 일을 하지 않느냐?”고 야단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은, 내가 결정한 일은 언제나 옳다”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했던 진시황‧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전두환과 박근혜가 그랬듯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신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으면 비난‧비방하고 적이나 원수처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설악산 대청봉을 함께 등정하자. 이게 싫으면 내 친구가 아니다”며 강권하는 이들이 있듯이, 자비와 지혜는 없이 정의감에 불타서 “너 왜 나처럼 투사로 살지 않냐? 나와 노선을 함께 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너는 적폐 세력이 분명해….”라고 하면서 자신과 같지 않으면 적으로 몰아가고 원수로 삼는 이들도 점차 늘어난다. 이처럼 획일성(劃一性)과 일사불란을 고집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게 예토(穢土)가 아니겠는가.

“갠지스(Ganges)‧야무나(Yamuna)‧아치라바티(Aciravati)‧사라부(Sarabhu)‧마히(Mahi)와 같은 강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큰 바다에 도달하면 예전의 이름과 개성을 버리고 그저 ‘큰 바다’라고 불리게 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귀족‧바라문‧상인과 노동자–네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 또한 집을 떠나 여래가 알려준 진리(法)와 계율에 따라 집 없는 상태로 출가하고 나면 그들이 가졌던 예전의 이름과 개성을 포기하고 그저 ‘석가 족의 아들을 따르는 사람들인 수행자들’이라고 불리게 되지요.” ‘밀린다왕문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다.

세상의 모든 강이 큰 바다에 도달하면 예전의 이름과 개성을 버리고 그저 ‘큰 바다’라고 불리게 된다. 이와 똑같이 사상가의 길을 가는 사람, 투사나 시민운동가의 길을 가는 이, 앞장서서 대중을 주도하지는 못해도 다른 이의 옳은 주장을 따라 선행을 이어가는 사람들 모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새해가 되길 기대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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