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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해의 ‘육조파경도’

기자명 김영욱

앎이란 스스로 깨우치는 것

▲ 양해 作 ‘육조파경도(六祖破經圖)’, 13세기, 72.8×31.6cm, 일본 三井記念美術館(출처: ‘三井家伝世の至寶’ 2015년).

若以知知知(약이지지지)
如以手掬空(여이수국공)
知但自知己(지단자지기)
無知更知知(무지경지지)

‘만약 지식으로 앎을 안다고 하면 손으로 허공 움키는 것과 같지. 앎은 단지 스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니 앎이 없어져야 다시금 아는 것을 아네.’ 인오(印悟, 1548~1623) ‘지지편을 보다(看到知知篇)’.

돈오·불립문자 의미 담긴
혜능이 경전을 찢는 모습
선묘 형식 감필체로 표현

옛 기억이다. ‘주역(周易)’을 처음 읽었던 무렵일 것이다. 무지한 제자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하니, 은사께서 매일 한 구절씩 가르침을 주셨다. 1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가르침은 사제의 동행이다. 스승은 길을 안내하고, 제자는 길을 따라간다. 덕분에 제자는 첫 발자국을 남기며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순간까지 쉬이 걸어 나간다. 처음 걷는 길에는 스승이 남긴 온전한 발자국만 가득하다. 차분히 좇다 보면 길의 끄트머리에 이른다. 돌아보면 배움의 큰길이자 지름길임을 안다. 큰길 사이로 보인 여러 갈래의 길은 오롯이 제자의 몫이다. 이제는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색은 이내 스스로 깨우친 앎의 길로 인도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지 않던가. 말과 글로 전하는 진리의 깨우침에는 한계가 있다. 양해(梁楷, 13세기경 활동)의 ‘육조파경도(六祖破經圖)’는 불립문자의 이치를 담은 그림이다. 남종선의 시조이자 선종의 제6조인 혜능(慧能, 638~713)이 불경을 찢어버린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본래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육조절죽도’의 한 쌍의 화폭이다.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제3대 쇼군(將軍)인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68~1394)를 거쳐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6~1598),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에도(江戶) 후기의 다이묘(大名)이자 다도가인 마쓰다이라 후마이(松平不昧, 1751~1818)까지 전래된 내력을 지닌 명품이다. ‘육조절죽도’가 니시혼간지(西本願寺)를 거쳐 와카사(若狹)의 영주인 사카이(酒井) 가문에 전해진 점을 보면, 아마도 근대의 어느 시기엔가 두 작품이 나누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혜능은 젊었을 때 가난하여 장작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느 날 ‘금강경’ 독송을 접하고 중국 북부에 있던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 601~675)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홍인의 수제자인 신수(神秀, 606~706)를 제치고 법맥을 이어 중국 남부 광동성으로 돌아가 가르침을 폈다. 혜능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으므로 경전을 읽거나 부처의 이름을 암송하는 것보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면 곧 깨달음에 이른다고 했다. 곧 돈오(頓悟)를 말한다.

양해는 극도로 간략화된 선묘 형식인 감필체(減筆體)로 혜능의 파경을 화면에 잘 담아냈다. 절제된 필선을 주조로 한 양해의 감필화법은 남송대 이후 선종인물화(禪宗人物畵)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림의 주제는 파경(破經)이다. 곧 돈오와 불립문자를 의미한다. 그저 알기만 하는 앎은 지식의 편린(片鱗)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 깨우친 앎이 본연(本然)의 앎이지 않겠는가.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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