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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새해에는…

기자명 최원형

배려, 타인 넘어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돼야

며칠 전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이 열리자 친구 사이로 보이는 외국인 두어 명과 한국인 너 댓 명이 전철에 올랐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언뜻 봐도 십대 청소년들로 보였다.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대라 전철 안은 한가했고 이들은 좌석 한 줄을 모두 차지하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켜고 다른 이들은 화면을 같이 들여다보며 영상을 즐기는 게 아닌가. 음악이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건데 이들의 행동은 마치 전철 안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싶었다. 전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큰소리로 뭐라 친구들과 감상평인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영어로 주고받는 이들의 대화에 전철에 타고 있는 몇몇 어른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지레 주눅이 든 것인지 포기를 한 것인지 아무도 그들의 행동에 대해 제동을 걸지 않았다. 실수라고 생각하기엔 그들의 행동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스피커폰 음악 청취하는 십대
전철서 영상 통화하는 아주머니
공공장소서 배려할 줄 알아야
자연과 조화로운 삶 가능할 것

볼륨을 어찌나 크게 켜놓았는지 읽고 있던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까 좀 망설이며 역을 하나 지났는데도 그들의 행동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지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간단한 영어로 좀 조용히 해달라고 정중하게 얘기했다. 한 친구가 나를 쳐다보더니 미안하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맹랑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그들 앞으로 가서 ‘너의 헤드셋을 사용해!’라고 명령조로 얘길 했다. 이때 이미 나는 화가 난 상태였다. 내 심장이 쿵쾅 거리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내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그들을 보자 그제야 몇몇이 각자 헤드셋을 꺼냈다. 나는 그들이 헤드셋을 갖고 있다고 짐작조차 못했고 단지 음악을 듣고 싶다면 공공장소에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예시로 알려줬을 뿐이었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주변에 있던 나이 지긋한 어떤 분이 날더러 잘 얘기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친구들의 행동이 거슬렸다는 얘긴데 왜 잠자코 있었을까?

전철 몇 정거장을 더 지나고 이들이 모두 우르르 내렸다. 그날 늦도록 그 장면이 계속 내게 남아 곱씹게 만들었다. 어릴 적 가장 먼저 배우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공중도덕 아닐까?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어린 친구들만 탓하기도 어려운 게 얼마 전 지방에 다녀오면서 탔던 기차 안 풍경이 떠오른다. 저녁 시간이라 피곤에 지친 사람들은 잠을 청하기도 하는 시간대였는데 난데없이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둘러봤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며 소리를 켜 놓은 채 크게 떠들고 있었다.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배우니 탓은 순전히 어른 몫일 듯싶었다.

지난해 2월에 김용옥씨의 책 한 권이 새롭게 손봐서 나왔다. 세밑에 우연히 그의 인터뷰에서 이 책이 거론되어 살펴보게 됐다. 그 책에서 김용옥 씨는 자신의 교육 신념으로 우리 전통문화가 강조해 온 네 가지 덕목을 꼽았다. 그 덕목은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어릴 적 숱하게 귀를 스치고 지나쳤던 말, ‘인의예지’였다. 한 글자씩 뜯어보면 모두가 다 이해하고도 남을만한 말이고 의미들이다. 이 가운데 나는 ‘의’와 ‘예’ 부분에 대한 도올의 해석에 귀를 기울였다. ‘의’는 사회적 정의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던 때는 다시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던 지난 9년을 관통하던 때였다. 여전히 정의가 무엇인가를 논증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도올에 따르면 우리의 직관은 무엇이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정의감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이라 했다. 작금의 교육현실이 과연 정의감을 키워주기에 적절한 환경인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 적어도 교육이 그래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를 달 여지가 없다.

세 번째로 꼽은 덕목은 ‘예’다. ‘예’는 곧 사회 질서를 통찰할 줄 아는 감수성이다. 큰 틀의 질서를 위해 작은 내 욕망을 버릴 줄 아는 사양지심을 키우는 게 바로 ‘예’를 기르는 방법이겠다. 도올은 이 네 가지 덕목에 더해서 ‘시민의 책임감’을 덧붙였다. 결국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일이야 말로 교육의 궁극의 목표일 것이다.

공공의 장소에서 부끄러움을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조화로운 삶의 출발일 테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연 생태계를 배려할 여력이 있을까? 새해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되는 그런 날들을 꿈꾸어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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