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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지옥과 유토피아

“지옥 맛본 자,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구합니다”

▲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그린 ‘관경십유관변상도’, 1323년 고려시대. 일본 지온인 소장.

개인사(個人史)에서 2017년은 특별했습니다. 정토신앙의 권진(勸進)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의 ‘나무아미타불’을 10년간 번역한 끝에 마침내 출간하였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정토시 48수를 모아 ‘꿈속에서 처음으로 염불춤을 추었다’를 펴냈기 때문입니다. 모두 법보신문의 출판 자회사인 ‘모과나무’에서 펴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 동안 정토를 향한 저의 발걸음은 늘 법보신문과 함께 했습니다.

관무량수경 서분 이야기에
빔비사라왕과 위제희 부인
감옥에 가둔 아들의 악행
지옥의 극심한 고통 상징
이 보다 더한 고통 있을까

우리가 극락 구하지 않는건
지옥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  
지옥의 고통 싫어하는 마음
극락구하는 마음과 표리일체

두 책은 모두 저의 ‘인생 책’입니다. 제 인생을 또 한 번 바꾸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집은 제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낸 책이라는 점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제 이름으로 서른 권이 넘는 책을 썼지만 저로서는 가장 애착이 가는 ‘한 권의 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일독을 빕니다.

각설하고 이제 오늘의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근래 정토신앙의 역사에서 보이는 몇 몇 어머니들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정토삼부경의 하나인 ‘관무량수경’에 나옵니다. 이 어머니 역시 기가 막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들 때문입니다. 분명 자기 속으로 낳은 아들인데 이런 아들이 어찌하여 생긴 것인지 모릅니다.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훌륭한 분이고 어머니도 훌륭한 분인데 이런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면 선천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후천적인 것이지요.

“아버지도 훌륭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굳이 원인을 찾아보자면 그 아버지에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아버지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권력이 아들을 망치게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들이 나쁘다고 말하게 됩니다. 말해야 합니다. 나쁜 이유는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해서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어차피 아버지의 권력은 아들에게 주어질 것인데 말입니다. 인도의 경우에는 죽기 전에 권좌를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은퇴한 아버지는 숲으로 들어가서 수행자의 생활로 ‘인생 2막’을 시작합니다.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싯다르타의 아버지가 싯다르타의 출가를 막고자 했던 것 역시, 정반왕 자신이 출가해야 할 순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빨리 권력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앙앙불락하다가 마침내 아버지를 감옥에 연금합니다.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고 맙니다. 단순히 감금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끝내 아버지를 죽여야, 스스로의 권력이 안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일체 먹는 것을 제공하지 말라, 엄명하였습니다. 굶겨죽일 작정입니다.

이런 아들을 보는 어머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헤아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목욕을 해서 몸을 깨끗이 합니다. 그리고 그 온몸에 꿀을 바릅니다. 그리고 영락(瓔珞) 속에도 음식물을 조금 부어서 숨깁니다. 남편을 면회하러 가서 먹이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어머니의 면회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옥을 지키는 병사로부터 이 어머니의 ‘특별한 면회’에 대한 보고를 듣게 됩니다. 아들은 분노합니다. 자기계획을 방해하는 자가 바로 어머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성을 잃고 어머니를 죽이라고 병사에게 명령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 이 나라에는 아버지가 어진 정치를 했기 때문에, 충성스런 신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충신들이 힘을 모아서 이구동성으로 직간(直諫)을 합니다. 폭군에게 직간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그것이 충신의 조건입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역사를 보면 예부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죽인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죽였다는 전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지금 그 첫 번째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되어 보았습니다만, 아이와 아버지의 관계는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와는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애당초 어머니와 아이는 한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는 선천적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는 한 몸이라는 느낌을 쉽게 갖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후천적이라 보아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용감한 신하들의 충언을 듣고 그래도 이 아들에게는 선근(善根)이 남아있었던 것일까요? 다소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를 죽이려는 마음을 거두어들입니다. 그 대신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합니다. 어머니마저 갇힌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 처한 어머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달리 또 지옥이 있다 한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까요? 지옥 고통을 맛보고 있는 어머니로서 정말 이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지옥을 깊이 맛본 자가 극락을 구합니다. 지옥이 아닌 다른 세상을 찾습니다. 유토피아를 원하게 됩니다. 유토피아는 이상 국가입니다. 정말로 그런 아들이 없는 나라, 권력 때문에 부모를 감옥에 가두는 아들이 없는 나라, 권력욕에 눈이 먼 인간들의 탐욕심이 없는 나라를 구합니다.

그런 나라에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 나라가 그립지 않겠습니까. ‘무량수경’ 하권의 말미에 가면 이른바 삼독오악(三毒五惡)단이라 부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무량수경’은 무량수불의 극락세계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경전입니다. 유토피아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경전입니다.

그렇지만 삼독오악단에서는 악행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왜 정토만을 그리지 않고 악행이 창조하는 세계도 그린 것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극락을 구하는 마음과 지옥을 싫어하는 마음이 하나입니다.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입니다. 서로 붙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극락을 구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우리가 지옥을 살지 못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지옥을 살면 살수록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지옥 고통을 느끼면 느낄수록 극락을 구하게 됩니다. 지옥을 싫어하는 마음 즉 예토(穢土)를 싫어해서 떠나고 싶은 마음과 정토를 구하는 마음은 표리일체입니다. 천태종의 스님이면서도 정토신앙을 했던 ‘겐신(源信)’은 그의 저서 ‘왕생요집(往生要集)’의 핵심으로, “염리예토(厭離穢土) 흔구정토(欣求淨土)”를 말했습니다. ‘관무량수경’ 서분(序分)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불교 최초의 절 죽림정사를 부처님께 보시(布施)하였던 빔비사라왕이고 어머니는 위제희 부인이며 불효불충한 아들은 아자타샤트루(아사세)입니다.    

2018년 새해에도 저의 편지를 잘 읽어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속에서 하루하루 건강하시고 순간순간 행복하시길 빕니다. 또 권진도 많이 해주십시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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