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떠나신다는 ‘짜장스님’

  • 기자칼럼
  • 입력 2018.01.15 13:35
  • 수정 2018.01.15 13:36
  • 댓글 6

1월5일 아침, 갑작스럽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조계종에 탈종계 제출하러 갑니다. 은사스님 20년 동안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짜장스님’으로 알려진 운천 스님이 은사 지현 스님에게 그날 아침에 보냈다는 문자였다.

전화를 걸었다. ‘사랑실은 스님짜장’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던 운천 스님을 2011년 인터뷰했던 인연 때문이었다. 운천 스님은 “떠나는 마당에 소속됐던 종단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그동안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짜장면을 공양했지만 종단 도움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서운해 했다. “몇몇 경로로 온다던 후원도 아직 안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계종 제자가 아닌 부처님 제자로 살겠다”고 했다.

스님은 직접 만든 짜장면을 군부대와 관공서, 병원, 복지관, 무료급식소, 전통시장, 사찰, 종교행사, 장애인 시설, 종교를 가리지 않고 공양했다. 10년 동안 대중공양 1100회, 70만 그릇의 짜장면을 나눴다. 2015년 네팔 지진 때는 봉사단을 만들어 급식과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포항 지진피해 현장 이재민들에게 짜장면을 공양했다.

그럼에도 다들 도와달라고만 하고 정작 도와주는 이는 없었단다. 조계종을 떠난다는 소식이 퍼지자 뒤늦게 인연 있는 이들의 만류와 설득이 있다고 한다. 제출서류 미비로 아직 ‘조계종 스님’이지만 운천 스님은 마음을 쉬이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운한 감정이 십분 이해되는 반면 짜장면 공양을 시작할 때 출가수행자로서 당당하던 7년 전 운천 스님의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당시 “그냥 할 일을 할 뿐이다. 불제자는 부처님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대중과 아픔을 같이 나눠야 한다”고 했다.

스님뿐 아니라 수많은 출가수행자들도 춥고 배고픈 곳에 있는 중생들 고통과 함께 하고 있다. 그 형태가 무료급식이든 밑반찬 배달이든 연탄 제공이든 장학금 지원이든 가리지 않는다. ‘보시에 상을 내고 싶지 않다’며 취재를 정중히 사양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다. 조계종의 무관심에 더러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조계종이 아닌 ‘부처님 제자’여서다. 더군다나 출가수행자에게 보시바라밀은 그 자체로 수행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현상에 집착 없이 보시해야 한다. 만약 보살이 어떤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한다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복덕은 광대하고 무량하다”고 했다.

▲ 최호승 기자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베푸는 것 모두 본질적으로 공하니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보시바라밀은 내 것이라는 아상을 타파하는 ‘방하착’이 되기도 한다.

떠난다는 상좌의 소식에 “그릇에 넘치지 않게 채우라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은사스님의 안타까운 한숨이 깊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