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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원 비구니, 연산군 탄압에도 공동체 유지”

▲ 해주정씨 집안의 정순왕후 및 정업원 관련 고문서 일부.

조선시대 왕실 비구니사찰인 정업원(淨業院)은 연산군 때 폐쇄되고 비구니스님들은 도성 밖으로 쫓겨나 흩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국가 시책과는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승가공동체를 유지해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업원의 위치를 두고 1960년대부터 학계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정업원이 있었음도 새롭게 밝혀졌다.

탁효정 한중연 연구원 밝혀
해주정씨 고문서 5점 분석
단종비인 정순왕후가 주지
종로 숭인동이 정업원 위치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최근 발간된 두 편의 논문인 ‘15~16세기 정업원의 운영실태’(조선시대사학 82)와 ‘조선시대 정업원의 위치에 관한 재검토’(서울과 역사 제97호)를 통해 16세기 정업원 비구니스님들의 실상과 위치를 구명했다.

정업원은 왕실의 기도처이자 비빈들의 출가처로 이용된 비구니사찰로 조선 초부터 광해군 때까지 270년 동안 유지된 사찰이다. 조선 초부터 왕실에서는 정업원에 각종 법적?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종 말년 잠시 폐지됐다가 세조 때 다시 세워지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정업원은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연산군이 들어서면서 창덕궁 인근의 민가를 철거하고 정업사의 비구니스님들까지 모두 내쫓아 뿔뿔이 흩어졌다고 전할 뿐이었다. 다만 1522년(중종 17년) 정업원에서 벌어진 불미스런 사건이 조정에 보고됐던 점을 미뤄볼 때 당시 도성 밖으로 쫓겨났던 비구니스님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탁 연구원은 해주정씨 고문서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5점의 정업원 관련 문서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문서가 작성된 15세기말~16세기 초의 정업원 운영 실태를 파악했다. 이 문서는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가 정업원으로 출가한 뒤 전 주지로부터 전해 받은 문서, 이를 공증한 한성부공안 등이다. 단종과 헤어진 뒤 60여년간 역사서에서 사라졌던 정순왕후가 해주정씨 고문서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 문서들은 정업원 비구니들이 직접 남긴 사료들로 정순왕후가 정업원에서 출가했다는 사실과 정순왕후의 사제관계, 정업원 폐사 이후 비구니들의 생활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정업원의 비구니들은 대부분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속가의 시양자에게 상속하기도 했다. 탁 연구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순왕후는 청룡사가 아닌 정업원에서 출가했다. 정순왕후의 은사와 사형은 모두 정업원의 주지를 역임한 비구니들이었으며, 정순왕후는 이들로부터 집과 전지를 물려받아 살아갔다. 단종의 제사를 자신의 제자들이나 친정 쪽 친척에게 맡길 수 없었던 정순왕후가 단종의 친조카인 정미수에게 일정부분의 재산과 함께 사당 관리 및 제사를 부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산군에 의해 도성 내 정업원이 철폐되자 정업원 비구니스님들은 도성 밖에 새로이 정업원을 마련하고 인근에 별도의 집을 지어 살아갔다. 이때 주지가 바로 정순왕후였던 것이다. 특히 해주정씨 고문서에서는 16세기 전반의 정업원 비구니들이 국가 시책과는 상관없이 계속 승가공동체를 유지해나간 사실들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는 실록에 등장하는 정업원이 조선 초부터 광해군대까지 수차례 폐사와 복설을 반복한 것처럼 비춰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이와 함께 탁 연구원은 해주정씨 고문서 분석을 통해 연산군에 의해 쫓겨난 비구니스님들이 현재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청룡사 바로 옆에 정업원을 세웠음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에 따라 1960년대부터 줄곧 논란이 돼왔던 정업원 위치 문제도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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