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고매한 포용성
82. 고매한 포용성
  • 최원형
  • 승인 2018.01.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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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연기적 이해가 이상기후 해결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로 이어지는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여남은 권의 책을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들이기만 하던 책들이 탑을 이루던 차였다. 탑 높이가 부담에서 압박으로 느껴지던 연말연시에 모든 일을 작파하고 일단 틀어박혔다. 번잡함에서 잠시 비껴 책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행복한 시간이었고 피폐했던 내면에 아주 조금 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읽는 책마다 그 매력에 푹 빠졌지만 그 가운데 두 권의 책에서 받았던 감동은 꽤 오래도록 내게 좋은 에너지가 될 것 같다. 한 권은 린 마굴리스와 도리스 세이건이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이다. 세균에서 오늘 우리 인류에 이르기까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여정 동안 벌어진 생명의 풍부한 다양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 시스템과 모든 생명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지구 시스템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또한 새롭게 익혔다. 과학으로 입증하는 중중무진 연기의 가르침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또 한권은 새해 첫 날 완독한 로렌 아이슬리의 ‘시간의 창공’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간혹 흐트러진 자세를 단정하게 가다듬기까지 했다. 저자의 숭고한 정서에 아주 깊이 빠져들었기에. 로렌 아이슬리는 점점 늘어나는 도시,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러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는 먹을 것을 공급하는 세상과 접촉이 줄어드는 것, 그리하여 그런 상황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우리가 무지한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바람이 나부끼는 어느 텅 빈 벌판에서 서서 ‘대체 무엇 때문에 살았던 것이지?’라고 질문을 던질 우리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이런 미래를 맞이하지 않을 방법을 얘기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매한 포용성’이다.

새해부터 북미 강타한 ‘살인한파’
힘없는 존재부터 희생되기 시작
결국 지구 전체 고통으로 이어져
계속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희생


“미국 한파 공습, 체감 영하 70도, 남극·화성보다 더 춥다. 새해 벽두부터 ‘살인 한파’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을 강타했다. 미국 전역에서 ‘냉동고 한파’로 2억 명 가량이 추위에 떨고 있으며 20여명이 사망했다.” 며칠 전 뉴스가 아니다. 2014년 1월, 한 일간지 기사 중 일부다. 2018년 새해에도 미국과 캐나다 동부의 한파 소식은 여전하다. 해마다 겨울이면 반복되니 이제 이런 혹심한 한파는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겨울이면 나타나는 기후로 봐야하지 않을까? 남극 기온을 두고 우리가 춥다고 호들갑 떨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도 한파로 인해 희생되는 난민 소식이 있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다 낡은 어른 슬리퍼를 신은 한 어린 아이의 발가락은 구멍 난 양말 사이로 푸르죽죽했다. 그 아이의 발가락들이 난민의 처지를 힘없이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올 겨울 추위에는 동물들의 고통이 전해져온다. 언제나 희생의 맨 앞줄은 힘없는 존재들 차지다. 갑작스레 곤두박질 친 기온에 기절하여 나무에서 떨어진 이구아나, 쇼크사를 당한 상어, 온 몸이 마비되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바다거북 등 동물들의 피해가 적잖이 충격적이다. 연중 기온이 영상 20도를 유지하던 따뜻한 플로리다 반도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며 벌어진 일들이다. 갑작스런 한파는 가장 먼저 가장 힘없는 이들부터 고통 속으로 침몰시키지만 결국 지구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이변을 보고 있자면 부메랑이 결국 돌고 돌아 당사자에게로 향하는 인과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의 희생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바다의 탈산소화가 1950년대 이후 4배가량 증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해양생물들이 살고 있는 바다에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소리 없이 그렇게 스러져갈 생명들이 저기 바다에 있다. 그들의 고통은 누가 만든 것이고 누가 대신 항변해줄 수 있을까?

로렌 아이슬리는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이 건강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고매한 포용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얘기한 고매한 포용성이란 무엇일까? 서로에 대한 존경심, 그러니까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우리가 지구와 시간과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모든 흔적들에 대해 좀 더 커다란 존경의 마음이야 말로 고매한 포용성이 아닐지. 그렇다면 지구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어떻게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급작스런 기후변화로 기절하는 생명, 얼어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며, 갈 곳 없는 가난한 이들을 두고 연민심만 느끼고 있다는 건 너무나 무기력하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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