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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

기자명 진명 스님

아침에 눈을 뜨고 시작하는 매일이 새날이지만, 무술년 새해 초라고 생각하니 나날이 새롭다.  새해 초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지난 해 부족함에 대한 후회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새롭게 다짐을 한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새로울 것도 없을 테지만 무언가 자신을 정돈하게 하는 시간이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초인 것 같다. 

언젠가 읽은 고전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일심가이처만사 이심불가이처일사, 일심가이교만우 이심불가이교일우”(一心可以處萬事 二心不可以處一事, 一心可以交萬友 二心不可以交一友). 즉 한 마음으로는 만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두 마음으로는 한 가지 일도 처리할 수 없다. 한 마음으로는 만 명의 벗과 사귈 수 있어도, 두 마음으로는 한 사람의 벗도 사귈 수 없다는 뜻이다.

세상에 와서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보다 부처님 제자로 출가해 승가공동체에서 스님들과 함께 한 시간과 포교일선에서 불자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해 온 시간이 더 길다. 지난 시간 나는 수행정진과 기도에 일심이었던가 생각해 본다. 물론 답은 ‘그렇지 못했다’이다. 모든 날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이 많은 날들이었다. 학인시절 고색창연한 부처님 도량을 거닐며 “너 어찌 이렇게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로 살겠다고 기특한 생각을 했나”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승가공동체 안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번민하는 날도 많았던 것 같고, 주어진 소임 안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는 했지만 돌아보면 회한이 많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오롯한 일념으로의 정진을 못한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들도 그렇다. 문중스님들이나 도반, 선후배 스님들, 포교현장에서 만난 인연들, 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인연들에게 일념으로 대했던가 생각해 본다. 물론 마음을 다 한 인연도 있겠지만 인연의 성격에 따라 긴 인연과 짧은 인연, 무겁거나 가벼운 인연, 어렵거나 쉬운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나름 대부분의 인연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아마도 생을 다할 때까지 응어리로 남을 인연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교우라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상대가 있기 때문에 손바닥이 마주해서 소리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리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살았지만 문득 떠오른 이 구절, “一心可以處萬事 二心不可以處一事, 一心可以交萬友 二心不可以交一友”가 올해는 나에게 숙제를 남긴다. 요즘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방송 일을 하다 보니 예고 없는 전화나 방문객을 접하곤 한다. 사람의 발길이 흔치 않은 작은 암자에서 때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받은 전화 한 통화에 머리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찾아뵙고 꼭 드릴 말씀이 있다”는 요청이었는데 그 당시 일정이 여의치 않은데다가,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오기에는 설명하기 좀 어려운 곳에 사찰이 위치하고 있어 “전화로 말씀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도움이 되는 사람은 만나고 도움이 안 되면 안 만나는 것이냐”며 호통을 치셨다. 머리가 ‘띵’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포교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익히 알고 감수해 왔지만 그날은 좀 그랬다. 물론 잠시 후 사과를 하시고 전화를 끊었지만 큰 질문 하나가 남겨진 느낌이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 만났는가?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부처님 제자로 사는 삶은 싫든 좋든 만나야 할 일이면 만나야 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해야 할 일이면 해야 하는 삶이라고, 또 그렇게 살아 왔다고 말이다. 올해는 거기에 더해 일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나를 주변한 인연부터 승가공동체, 사회나 국가가 맑고 향기로워지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 본다. 새해 첫 달에 세워본 망상이 마지막 달에도 다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진명 스님 경기도 시흥 법련사 주지 jm883@hanmail.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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