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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길고양이를 만났다

기자명 최원형

삶의 목적은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데 있다

한파가 한반도를 꽁꽁 얼리고 지나갔다. 지나갔다고 잘라 말하기에 겨울의 터널은 아직도 길기만 하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시베리아를 경험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던 날도 있었다. 그 춥던 어느 날 잔뜩 움츠리고 길을 걷다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초등학교 사오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 두 명이 나무 덤불 아래를 들여다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이 들여다보니 길고양이 한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고양이는 며칠을 굶었는지 게다가 어디에 뜯겼는지 몰골 이만저만 사나운 게 아니었다. 털은 푸석거렸고 귀와 등 쪽엔 군데군데 새빨갛게 살점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들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어른이니 뭔가 해결책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며칠 굶은 걸까?”라고 말을 걸자마자 아이들은 고양이 밥그릇이 텅 비었다고 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밥그릇 위치까지 아는 걸로 봐서 그 아이들은 고양이를 이미 알고 있는 듯싶었다. 일단 고양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요깃거리일 것 같아 고양이 먹일 것을 좀 사오겠다 말하고 돌아서는데 “물도 없어요” 했다. 근처 가게에 들러 참치 캔 두 개랑 생수를 한 병 사왔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참치 캔을 뜯어서 고양이 앞에 놔 줬다. 물도 따라줬다. 고양이는 참치에 혀를 좀 대더니 제대로 먹질 못하고 희미한 소리로 갸르릉 거리기만 했다. 오래 못 먹어서 먹질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고양이가 먹질 못하고 있으니 쉽사리 그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우리 셋은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았다. 고양이는 일어나 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자동차 아래로 들어갔다. 우리가 계속 지켜보는 게 못내 불편했던 걸까? 그런데 걸어가는 걸 보니 앞발 왼쪽을 절뚝거리고 있었다. 그게 그 고양이의 마지막이었다.

시베리아 한파 들이닥친 한반도
추위 내몰려 ‘내일’없어진 생명
길고양이·유기견에 도움줬지만
‘동정심’은 근본 대책 되지 못해

몇 년 전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는 동물보호소에 헌 이불을 보낸 적이 있다. 따뜻하게 난방 할 형편이 안 되니 추운 겨울에 이불만 충분해도 유기견들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할 거라는 소릴 들은 뒤였다. 이불장을 들여다보니 덮지도 않는 이불들이 빼곡했다. 이불 박스에다가 담당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꾹꾹 눌러 적으며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사는 삶을 반성했다.

마포구의 한 전철역 출구에는 방치된 자전거 위에 담요를 씌워 고양이 보금자리를 만들어놓은 이가 있다. 추운 겨울이 힘없는 존재들에게 가혹한 시련이 될 거라는 걸 눈치 챈 어떤 이의 손길이었을 것이다.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을 챙기는 캣맘과 마주칠 때가 더러 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면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했다. 처음엔 의아했는데 주민들 가운데 고양이를 끌어들인다고 항의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그 말뜻을 이해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틈바구니마다 추위에 내몰린 숱한 생명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서문에 저자인 존 그레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두었다. ‘삶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부처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정견이다.

아이들은 가여운 길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싶어했다. 나는 잠깐 갈등하다가 그냥 돌아섰다. 병원에 데려간들 쉽게 치료가 될지, 이미 늦었다고 한다면 그 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지저분한 고양이에게 어떤 대접이 돌아올지, 내 머릿속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며 예상 답안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몇 만원 모금함에 넣는 일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마침 발 토시를 하고 있던 터라 그걸 벗어다 고양이가 주로 머문다는 나무아래에 얌전히 깔아두고 왔다. 고양이가 다시 그곳으로 올 거라 생각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솔직히는 무거운 내 마음을 좀 덜고자 한 일이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가엾은 동물을 모른 척 지나치지 않아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과 헤어지는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내 비겁함이 부끄러웠다.

밤이 깊을수록 기온은 더욱 곤두박질치고 한 밤에 깨어 그 길 고양이는 내일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왜 괴로웠을까, 찬란히 떠오른 해를 보며 내게 물어보았다. 그 괴로움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질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한낱 동정심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세상을 얼마나 올바로 바라보며 살고 있는 걸까? 올바로 바라볼 지혜는 있는 걸까? 이슥한 밤길에 덤불 속 반짝이는 눈망울에게도 평화가 오기를 마음으로 비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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