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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사지

기자명 임석규

대형산지사찰로 ‘국통’ 등 글씨 비편 통해 위세 높은 사찰 입증

▲ 흥전리사지 발굴 금당지 전경.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지만 미래는 어둡기만 하고, 녹록치 않은 현실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 보내야했던 트럼펫 연주자 현우가 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강원도 삼척시 도계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게 된 현우. 낡은 악기, 찢어진 악보, 색 바랜 트로피와 상장들이 초라한 관악부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만 하고, 현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망 없는 승부를 걸어야만 한다. 류장하 감독, 최민식 주연의 2004년 가을 개봉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이란 영화의 내용이다.

탄광마을 도계읍 폐사지에
석탑과 석등 부재 등 방치

2014년부터 사지조사 진행
건물지에서 많은 유물 출토

지방 아닌 경주양식 유물
통일신라 청동정병도 나와

비편서 신분 높은 스님 확인
승단에서 쓰던 관인도 발굴

강원도로 확대된 선종 경로
후속 조사로 확인 가능 기대

내가 도계를 처음 방문한 때는 2013년 겨울 늦은 오후였다. 청량리역에서 4시간 정도 무궁화호를 타고 도계역에 내린 뒤라 조금 피곤했지만, 중요한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태백과 함께 1970년대 우리나라 탄광산업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광산마을 도계. 도계탄광에서는 아직도 석탄을 캐고 있지만 더 이상 신입직원을 뽑지 않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현우가 경험했던 것처럼 도계의 첫인상은 춥고, 쓸쓸했다. 석탄산업이 흥했던 1960~70년대 전성기를 뒤로한 채, 산업근대화 과정에서 에너지자원을 공급하고 텅 빈 검은 내장을 안은 채 살아가는 작은 마을 도계. 이 날은 도계읍 번영회 회장님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청동정병.

당시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2013년부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중요 사지(寺址)’를 체계적으로 보존·정비·활용하기 위한 학술발굴조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2014년에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 있는 절터를 조사할 예정이었다. 이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 석탑과 돌비석의 귀부, 석등부재 등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었으며, 건물이 들어서 있던 부지에는 소나무를 가득 심어 놓아 지하 유구가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유적을 조사하고 역사적 가치를 밝혀 정비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노력과 더불어 현지 주민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발굴과 정비가 끝난 후 해당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고, 활용하는 것은 주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하면 연구원들은 몇 달씩 현지에 머무르며 생활해야하기 때문에 숙소, 식당, 철물점, 현장 보조원 모집 등 현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럴 경우 마을 이장이나 번영회장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날 도계읍 번영회장님과의 만남은 순조로웠다. 아니 생각보다 매우 적극적이었다. 시간은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반드시 발굴을 완료하고 정비하여 도계읍에 번듯한 국보유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폐광촌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찰이 있었다는 말에 마을 유지들은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회장님은 깨끗한 숙소와 맛있는 식당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침 본인도 읍내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시작한 흥전리사지 조사는 지난 2017년 까지 4년간 6차에 걸쳐 진행했으며 지금까지 총 14동의 건물지에서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밀조사 첫 해인 2014년에는 조사구역을 유적의 위치에 따라 서원과 동원으로 나누고 총 36개의 트렌치를 설치하여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시굴조사는 유적의 범위와 건물의 배치를 짐작하기 위해 탐색 구덩이를 파보는 것이다. 이 결과에 따라 발굴범위를 결정한다. 조사결과, 건물지 7동, 탑지 1기, 대형 석축 4기 등의 유구를 확인하였으며, 귀면와, 곱새기와, 막새, 착고와 등의 각종 기와류와 꽃무늬가 선각된 청동제 장식, 철솥, 청동숟가락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국통’(國統)이라고 쓰인 통일신라시대 비석 조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도계탄광 넘어 산 속에 있던 이 사찰의 위상을 말해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 청동인장 인면 명문.

2015년에는 1차 시·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서원 금당지 주변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금당지를 비롯한 5동의 건물지와 석축 1기, 석렬 1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가장 큰 성과는 금당지의 평면 형태를 밝힌 것이다. 이 절의 금당지는 특이하게 좌우에 건물이 한 동씩 더 붙어 있는 형태이다. 즉 동·서익사를 갖춘 건물이고, 출토 유물로 봐서 9세기경에 축조된 것이었다. 그리고 건물의 기단부는 불국사 대웅전처럼 돌을 다듬어 만든 가구식 기단을 사용하였다. 특히 기단부의 기둥 역할을 하는 우주와 탱주에는 흰 색 화강석을 사용했고, 면석에는 붉은 색 역암을 사용해 매우 화려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현장회의에 초대되었던 건축학계 원로 김동현 선생님(전 동국대학교 교수, 건축사)은 이 불전유구를 보시면서 “경주 느낌이 많이 난다”며 연신 감탄해 하셨는데, 이후 이 유적을 조사하면서 지방양식보다는 당시 수도였던 경주에서 장인이 직접 와서 제작했다고 생각되는 기와 등 관련 유물이 계속 출토되어 노스승의 혜안에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가구식으로 기단을 조립하고 그 위에 양 익사를 갖춘 건물은 매우 드물어서 건축사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금당 옆에 붙어 있는 건물의 용도나 성격은 확실히 알 수 없었는데, 흥전리사지 금당 동쪽 익사 내부에 대형 적심이 있고, 그 건물의 기단에 거북이 모양 비석 대좌가 놓여 있어서 고승의 비석을 안치했던 비전(碑殿)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2016년 4월에는 동원구역의 건물지 동편을 조사하여 건물지 3동과 부속시설 3기를 확인하였다. 이 발굴에서는 1호 건물지에서 완전한 형태의 청동정병 2점이 출토되어 화제가 되었다.

청동정병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주로 제작되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청동정병은 군위 인각사 발굴조사 시 일부 훼손된 상태로 출토된 2점과 부여 부소산에서 공사 중 수습된 1점 등 총 3점(비지정문화재)에 불과하다. 군위 인각사지 청동정병 등 기존에 확인된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8세기 후반경의 작품이라면, 흥전리사지 출토품은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흥전리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정병은 매우 희소한 통일신라 청동정병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었으며,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흥전리사지)과 유물(청동정병)과의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었다.

▲ 청동인장 출토모습.

2016년 8월에 착수한 발굴조사에서는 서원의 북쪽 능선에서 ‘~대장경(大藏經)~’명 비 조각이 수습되었다. 이 비 조각은 흥전리사지에 주석했던 스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흥전리사지에서 발견한 비 조각은 5편이고, 조사 이전에 수습된 것도 몇 편 더 있다. 단편적이지만 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흥전리사지에 주석했던 스님의 성은 김씨이고, 신라왕경의 명문집안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했으며, 당나라 대장경과도 접촉하였고, 국통의 지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비문 중에서 ‘대장경’이 언급된 것은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뿐이다. 그리고 비문에 쓰인 ‘자금어(紫金魚)’의 용례로 보아 당나라에서 자금어대를 하사받은 최치원이 작성하였을 가능성도 있어 비문대조와 필체분석 등을 통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에는 2016년 조사된 2·4호 건물지의 서쪽 구릉지 일대와 남쪽지역을 대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에서는 금속제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는데, 사찰 유적에서는 드물게 통일신라시대 청동관인 2점이 완전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특히 한 점은 청동인주함에 인장이 담긴 채 출토되었다. 보존처리 중인 청동인장은 2과 모두 정사각형(5.1㎝)이며, 끈을 매달 수 있는 손잡이가 있다. 그리고 6자의 전서체(篆書體)와 기하문(幾何文)이 각각 새겨져 있는데, 한 점의 인문(印文)이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으로 판독된다. 서체는 당나라 관인(官印, 관청에서 공적으로 사용한 인장)과 유사해서  통일신라시대 승단에서 사용한 승관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인장은 손잡이의 형태와 서체 등이 경주 황룡사지 출토품과 매우 흡사하다. 한국 인장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며, 특히 ‘범웅관아(梵雄官衙)’라는 명문은 통일신라시대 승단 조직과 국가와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된다.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결과를 종합해보면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 있는 절터는 부처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했던 서원지역과 생활공간이었던 동원지역으로 나뉘어있는 대형산지가람이다. 이곳에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건축물과 함께 탑, 석등, 귀부 등 빼어난 석조문화재, 금동번과 청동정병, ‘국통’ ‘대장경’ ‘자금어’가 새겨진 비 조각 등의 출토유물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위세 높은 사찰임이 증명되었다. 향후 조사를 통해 강원도지역으로 확대된 불교 선종문화의 이동경로 및 지역성 등에 대한 자료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며,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서는 사역전체에 대한 사적 지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희망이 있다면 탄광을 찾은 도계중학교 관악부 아이들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광부들 앞에서 연주한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을 멋지게 정비된 흥전리 절터에서 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유적연구실장 noalin@daum.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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