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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린다와 우디의 시공간

“이럴 수가! 여보, 이것은 우디의 얼굴 아니오?”

▲ 그림=육순호

1945년생 미국인 린다 버리치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나는 삶을 갈망한다. 하지만 삶 역시 나를 원해줄까?”라고 쓴 일이 있었고, “죽음이란 영원한 것, 하지만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쓴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스물두살 린다
꿈에 나타난 남성 초상화 그려
두통 호소하다가 쓰러진 그녀
결국 뇌종양으로 짧은 생 마감

꿈속 남자 린다가 사는 곳에서
400마일 거리에 살고있는 우디
린다와 동갑내기…각막병 앓아
결국 실명해 린다 눈 이식받아
두 사람 책꽂이의 책도 일치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63년 어느 봄날 오후, 그녀는 자기 또래의 남자 얼굴을 그렸다. 그녀의 어머니가 “누구를 그린 거지?”라고 묻자 그녀는 “제 꿈속의 남자예요. 갑자기 누군가를 그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리다보니 이런 얼굴이 되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른 사진들을 모두 치우고는 그 자리에 남자의 초상화를 걸었다. 대학 시절에 린다는 두통을 자주 느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애너폴리스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두통은 계속 이어졌지만 단순한 편두통으로 생각한 그녀와 그녀의 부모는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1968년 봄, 린다는 친구들과 푸에르토리코에 휴가를 가서 뉴잉글랜드까지 여행했다. 5월에 있었던 오빠의 결혼식에도 명랑한 기분으로 참석했고, 6월 학기가 끝나는 날까지도 아무런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절, 무슨 예감을 받았는지 그녀는 매일 자기 방을 깨끗이 정돈하고, 묵은 연애편지나 추억이 될 만한 다른 것들을 하나하나 버렸다.

7월21일, 린다는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병원에 가는 도중 그녀는 “무서워요! 죽을 것만 같아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비슷한 시각, 린다가 사는 곳으로부터 400마일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서는 린다와 동갑인 스물두살 청년 우디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2년 전, 그는 자신이 심한 각막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콘택트렌즈로 안구를 눌러 증세를 무마할 수 있었지만 병이 심해지자 그로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린다가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1968년 봄, 우디는 각막 이식을 받을 생각으로 윌리엄 발로튼 박사를 찾아갔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문제는 아직껏 각막 기증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다시 병원에 들른 6월 말, 우디는 집으로 돌아가 각막이 구해지면 즉시 수술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퇴원했다.

린다가 병원에 도착했다. 이미 의식을 잃은 그녀를 진단한 결과 뇌에 악성 종양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곧 수술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에 돌아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린다의 부모는 병원으로부터 “모든 게 끝났습니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소식을 전하면서 병원 측은 그들에게 린다의 각막을 기증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평소 린다가 자주 “내 심장을 남에게 주고 싶어요”라고 했던 말을 기억해낸 린다의 부모는 병원 측의 요청를 받아들였다.

린다의 눈은 곧 매밀랜드 눈 은행으로 보내졌다. 눈을 기증받을 수혜자를 적은 명단의 맨 꼭대기에 적혀 있는 이름은 우디였고 그리하여 그는 다음 날 오전 11시에 새 각막을 자신의 눈에 이식받을 수 있었다.

몇 주의 회복기를 거친 다음 우디는 자신에게 눈을 기증한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는 뜻을 담은 편지를 눈은행에 보냈다. 기증자의 신분은 비밀에 부쳐지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우디의 절실한 심정을 고려하여 눈은행 측은 린다 부모에게 우디를 만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 그들의 동의를 받았다.

10월6일 토요일, 우디는 린다가 살던 집을 방문했다. 우디는 전에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린다의 부모에게서 매우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 린다는 죽기 두 달 전부터 여러 권의 책을 구해 자기 책장에 꽂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로렌스, 디킨스, 릴케, 쉘리, 헤밍웨이, 헤겔이 지은 그 책들은 우디의 책장에도 꽂혀 있는 것들이었다.

떠나기 전에 우디는 린다의 부모에게 자신의 사진 한 장을 선물로 주었고, 린다의 부모는 그것을 액자에 끼워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몇 달 뒤, 무심코 사진을 보던 린다의 어머니에게 불현듯 그 얼굴을 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린다의 어머니는 곧 린다의 유품을 뒤져보았다. 그런 끝에 그녀는 린다가 그린, 꿈속에서 보았다던 젊은 남자의 초상화를 찾아냈다.

“이럴 수가!”

그녀는 남편을 불러 물어보았다.

“여보, 이게 누구의 얼굴이죠?”
“이건 우디 아니오?”

초상화와 우디의 사진을 비교해보니 두 얼굴은 거짓말처럼 닮아 있었다. 린다의 유품에서 이런 시가 발견되었다. “세상 그 어느 괴로움도/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심장 사이에서 오고가는/ 사랑의 괴로움보다 더하지는 않으리.”

인간은 시·공간에서 살며, 그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라는 순서로 흐른다는 것과 모든 사물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가 적은 인간의 공간 이동은 느릴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인간이 자동차, 선박, 비행기, 우주선 등을 개발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도 있고 공간 또한 중력에 따라 휘어지기도 하고 수축되거나 팽창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끌어당겨 미리 알거나, 수십 마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마음만으로 알아내는 방법은 개발되어 있지 않다.

린다 버리치는 시간을 앞지르고 공간을 건너 뛰어 미래에 자신의 각막을 이식받게 될 우디의 초상화를 그렸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는 이 일을 우연의 일치로 보아 웃어넘길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닐지도 모른다. 불교경전은 수많은 신통과 이적을 전하고 있는데, 그중 많은 것이 상상이나 과장의 소산이라 하더라도 한두 가지 정도는 종교적으로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진실일지 모른다. 그 경우, 그 특별한 신통과 이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아는 시간 너머의 시간, 공간 이상의 공간으로, 즉 초월적인 어떤 특별한 세계로 인도하는 문이 될 수 있다.

세계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함께 철학, 예술, 종교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불교는 한편으로는 과학적 이성 위에, 또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과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믿음, 또는 직관 위에 서 있는 심오한 체계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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