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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홍사성의 ‘못난이들이 지은 화엄세상’

기자명 김형중

우리 중생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부처님 세상인 화엄 세계임을 밝혀

못난이는 누구든지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에 가볼 일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새든 벌레든
꽃이든 나비든 흙이든 물이든 그 무엇이든
꼭 한번 가볼 일이다
가서 깨달을 일이다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는지를
그 부처가 얼마나 멋진 화엄세상을 만드는지를
뒤틀어진 몸으로 서 있는 기둥은 나무부처
돌계단에 드러누운 장대석은 돌부처
빛바랜 단청 속에는 나비부처
용마루에는 이끼 낀 기와부처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부처, 부처, 부처
하찮은 중생도 여기서는 부처가 되나니
거지같이 살아온 인생도 황제가 되나니
누구나 별 볼일 없이 걸어온 길 억울하거든
전라남도 구례땅 화엄사 각황전에 가볼 일이다
가서 못난이 부처나 돼볼 일이다
부처가 못 되면 부처 구경이라도 하고 올 일이다

국보67호 화엄사 각황전 찬양
중생이 부처이고 산천초목이
성불해서 온갖 꽃으로 장식한
‘대방광불화엄세계’를 시현해

홍사성(1951~현재)의 ‘못난이들이 지은 화엄세상’은 2016년 5월15일 동아일보 ‘이근배의 신품명시’에 실린 시이다. 이 시는 국보 67호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을 찬양한 것이다.

각황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으로 원래 이름은 ‘장륙전(丈六殿)’이었으나 조선 숙종이 ‘각황보전’이란 편액을 내리면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화엄석경(華嚴石經)’을 모신 법당으로 유명하다.

홍사성의 ‘못난이들이 지은 화엄세상’은 중생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부처님의 세상인 화엄세계임을 밝히고 있다. 중생이 부처이고, 산천초목이 그대로 성불해서 부처의 세계를 온갖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대방광불화엄세계’를 시현(示現)하고 있다.

시인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는지를/ 그 부처가 얼마나 멋진 화엄세상을 만드는지를/ 뒤틀어진 몸으로 서 있는 기둥은 나무부처/ 돌계단에 드러누운 장대석은 돌부처… 하찮은 중생도 여기서는 부처가 되나니/ 거지같이 살아온 인생도 황제가 되나니”라고 읊고 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중생이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부처이고,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다. 부처가 아닌 중생은 없다. 세상은 백천만겁의 불가사의한 공덕으로 이루어진 기적의 소산물이다. 눈앞에 있는 풀 한 포기가 존재하기 위해서 억겁의 세월이 걸렸고, 함부로 대하고 있는 못난이라고 부르는 중생이 현존하기 위해서 억겁의 인연공덕이 모아졌다. 오히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일은 거기에 비하면 식은 죽을 먹듯이 쉬운 일이다. 못난이 중생들이 모여서 부처님 나라를 이루며, 중생이 부처가 된다. 무지렁이 민초가 제국을 이루고 거기서 뽑힌 예쁜 꽃이 화왕(花王)이 되고 제왕이 된다.

시인은 “누구나 별 볼일 없이 걸어온 길 억울하거든/ 전라남도 구례땅 화엄사 각황전에 가볼 일이다/ 가서 못난이 부처나 돼볼 일이다”라고 읊고 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께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고 설법했다. 중생이 부처다.

스스로 못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깨달음과 위로를 주는 시다. 시인은 불교학자로서 종횡무진 자유자재하게 ‘화엄경’의 부처와 화엄의 세계를 화엄사의 각황전을 이루고 있는 구조물을 통해 설법하고 있다. 그의 시집 ‘내년에 사는 법’에는 ‘부목살이’ ‘목어’ 등 주옥같은 불교시가 듬뿍 담겨 있는데, 인생을 관조적으로 통찰하는 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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