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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과 불교

불교, 민주화에 소극적시대 아픔 깨어 있으며사회문제 해결 나서야

‘1987’은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부터 6월 항쟁까지를 다룬 영화다.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그는 제5공화국 말기인 1987년 남영동 치안본부에 붙잡혀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사망했다. 처음 경찰은 지병으로 인한 쇼크사였다고 주장했으나 부검 결과 박종철은 욕조 턱에 목이 짓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축소해 넘기려는 정권에 맞서 6월 항쟁이 벌어졌다.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6·29 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직선제 시행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에는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꾼 많은 의인들이 등장한다. 사건의 조기 종결을 거부하고 부검 명령을 내리는 부장검사, 끈질긴 취재로 진실을 밝혀나간 기자, 지병이 아닌 타살이었음을 알린 의사, 교도소 안팎의 민주주의 인사들과의 연락을 도왔던 교도관, 사인 조작을 거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 진실규명을 외치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죽어간 젊은이 등등. 서슬 퍼런 군부독재 아래에서도 이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피어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스님과 사찰도 등장한다. 무대가 된 사찰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머무르는 부산 해운정사다. 민주화의 대부라는 김정남은 사찰에 은신하며 활동했고, 그를 쫓는 형사들로부터 스님들이 피신시켜주기도 했다.

영화에는 없지만 독실한 불자였던 박종철 열사 및 그의 가족들과 인연이 깊었던 부산 사리암에 영정과 위패가 모셔졌다. 사리암에서 7일마다 계속된 그의 49재는 민주인사와 대학생들이 집결하는데 기여했다. 당시 군부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공동대표 및 대통령 직선제 투쟁을 주도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지선 스님(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그렇더라도 민주화 과정에 있어 가톨릭과 개신교에 비해 불교의 역할은 미미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로마 교황청이나 미국 등 서구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불교는 비빌 언덕도 없고, 조선왕조 500년의 탄압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불거진 내부문제를 추스르기에도 버거웠던 시대적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호국(護國)’의 ‘국(國)’이 모든 중생이 안락한 불국토라기보다 지배계층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호도됐던 것도 당시 교단의 자화상이었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권력층을 옹호하는 호국법회가 끊이지 않았고,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호국승군까지 등장했던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 이재형 국장

한국불교는 1994년 종단개혁을 기점으로 크게 쇄신됐다. 정권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았고 인권, 통일, 사회복지 등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이후 여러 난관과 굴곡을 거치면서 이제 불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약자들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종교로 점차 인식되고 있다.

대중이 외면하는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 영화 ‘1987’은 종교가 시대의 아픔에 늘 깨어있어야 하며, 설령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묵묵히 걸어가야 함을 보여준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26호 / 2018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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