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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숲의 위로

기자명 임연숙

겨울 숲이 주는 쨍하게 맑은 에너지

▲ 허윤희 作 ‘숲의 위로(Forest Comfort)’, 종이 위에 목탄, 78×110cm, 2014년.

겨울이 되면 콧날이 쨍하고 볼이 얼얼하게 추운 날이 며칠씩 있다. 지구 온난화로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겨울은 그렇게 콧날 쨍하게 추운 날들이다. 맑고 깨끗하지만 추운 날, 그래서 머리까지 얼얼한 날.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드는 겨울이 춥다 춥다 하면서도 좋다. 온몸의 신경이 추운 것에 곤두서 있고 아무 생각이 안 나서, 그래서 그 잠깐이나마 집중하니 머리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드로잉으로 표현한 숲의 소재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같아
숲의 질감·느낌 더 크게 전달

거기에 허윤희 작가의 그림처럼 메마른 나뭇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낼 것만 같은 숲길을 걷는다면 이 그림의 제목처럼 위로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허윤희 작가는 ‘드로잉’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전 밑 작업으로 인식되었던 장르를 작품으로 완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주로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숲, 나무, 나무뿌리, 나뭇잎, 채소와 같은 식물과 작가의 일상 속 사물들이다.

매일 산책하는 길에 만나는 작은 나뭇잎들, 그 중에서 그날의 빛깔을 대표하는 나뭇잎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기록하여 일기처럼 남기는 작업에서부터 기다란 막대에 목탄을 끼워 큰 벽면 전체를 목탄드로잉으로 채워 넣는 작업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물들을 기록한다. 특히 일상을 나뭇잎으로 기록하는 작업은 작지만 생명의 남과 죽음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뭇잎 하나하나에 시간이 더해져 작가의 기록과 역사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밑그림이라는 말처럼 드로잉이라는 기법은 작가가 작업을 하기 전 초기의 생각과 감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빠르고 속도감 있게 기록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면서 작가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허윤희 작가는 주로 나무를 태워서 만든 목탄이라는 재료로 드로잉을 한다. 숯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것이다. 연필보다 물러서 부드럽게 그릴 수 있고, 그림을 그린 후 문지르면 가루가 떨어지고 선이 지워지면서 그 선은 면으로 채워진다. 긋고 문지르고를 반복하면서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영원에 대한 갈망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영원에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라는 작가의 말은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 온전히 자신을 담아내고자 함을 느낄 수 있다. 완성작을 향해가는 그 과정과 행위의 순간들이 작가에게는 중요한 부분이다. 영원에 대한 갈망을 순간순간의 진실로 쌓아나간다는 말처럼 목탄드로잉의 흔적들을 쌓아나가면서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 색도 없고 질감도 없고 두께감도 없는 그림을 보며 숲의 질감과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숲의 소리까지도 연상하게 된다. 그림에 집중하면 작가의 작품을 본 다기 보다 내 자신을 보는 듯하다. 허윤희 작가의 ‘숲의 위로’는 코끝이 쨍한 어느 맑은 겨울 햇볕이 드는 숲길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게 한다. 또, 나뭇잎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인물은 많은 것들을 연상하게 한다. 일에 묻혀 숲길을 걸은 지 오래다. 그래도 숲의 기억을 되살려 보고 조용히 내 안을 드려다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또, 새로운 날들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하여 나에게 말한다. 숲을 떠 올려 보라고….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26호 / 2018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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