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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심장으로 온가족 생계 책임져

  • 상생
  • 입력 2018.02.02 12:31
  • 수정 2018.02.02 22:19
  • 댓글 1

조계사·화계사·법보신문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캄보디아 이주민 렛사렌씨는 매주 일요일 군포 캄보디아 이주민 법당을 방문해 법당일을 도우며 불교공부를 한다. 심장병 앓으며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스님 법문 들으며 다스린 경험 후 신심 깊은 불자로 거듭나고 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렛사렌씨
번개로 죽은 언니 자식 부양
14살 때부터 섬유공장 취직
한국서 일하며 심장 질환 발견
수술비 마련 위해 1년 병 방치

14살에 두 아이의 보호자가 됐다. 농사를 지으러 밭에 나갔다 번개를 맞고 죽은 큰 언니의 자식들을 돌보기 시작한지 올해로 19년째다. 생활력 강하고 야무진 캄보디아인 렛사렌씨는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도시로 나가 가족을 부양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섬유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가족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이 외롭고 힘들었지만 조카들을 생각하면 힘듦은 사치였다. 그녀가 일하지 않으면 부모님과 조카들은 굶어 죽을 판이었다.

5년을 일하고 태국으로 건너갔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볼 요량이었다. 심한 차별을 겪는 중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다. 2년간의 태국 생활을 접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캄보디아로 돌아왔다. 한국어 공부를 하며 차근차근 한국행을 준비했다. 조카들이 자라면서 생활비는 물론 교육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이 든 부모님을 위한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그나마 유지했던 생활이 기울어갔고 첫째 조카가 대학에 들어가며 이제는 등록금도 마련해야 했다. 그동안 준비했던 한국행을 감행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게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렛사렌(33)씨는 2016년 한국에 왔다.

섬유공장에 취직해 기계를 돌리며 천을 뽑아내는 일을 했다. 3교대 근무에 밤낮이 바뀌어 생활리듬이 깨졌고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 무엇보다 힘은 것은 기계소음이었다. 공장을 가득 메우는 소음에 일을 하며 깜짝깜짝 놀랐다. 그때마다 심장이 아파왔다.

배정된 기계에서 나오는 직물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했기에 완성된 직물을 기계에서 뽑아내는 것도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20kg이 넘는 직물을 하루에 수십 번씩 뽑아대면 몸은 녹초가 되고 말았다.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도착하는 곳은 공장에서 마련해준 숙소였다. 공장 가까이에 있어 쉬는 동안에도 소음이 고스란히 들려 편히 쉬지도 못했다. 숙소 사용료와 식비, 생활비를 내고 나면 고향으로 보낼 수 있는 돈은 고작 30만원 정도였다.

그날도 피곤한 몸을 추슬러 출근을 했다. 기계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려 숨이 조금씩 가빠오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일을 시작하자 으레 소음이 시작됐다. 그날따라 유난히 심장의 반응이 컸다. 숨이 점점 가빠왔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통증이 심해졌다. 멍해지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공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자 조금은 정신이 들었다.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면서도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어요. 부모님은 병이 더 깊어지셨고 둘째 조카도 대학에 들어갔거든요. 지금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하지만 병은 생각보다 깊었다. ‘심방중격 결손’. 우심방과 좌심방 사이의 벽에 구멍이 생겨 피가 새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거나 나이가 더 많아지면 수술을 할 수 없었기에 당장 수술을 권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야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심장에 무리가 심하게 갑니다. 휴식하며 수술을 준비하세요.”

의사 말대로 할 수 없었다. 휴식은 곧 가족의 죽음이었기에 20년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이제는 가족 생활비에 자신의 수술비까지 벌어야 했다. 차마 쉴 수 없어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섬유공장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더 편안한 일이었다. 사장님의 배려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조립이나 검사 업무를 했다. 밤낮이 바뀌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지난 번 공장보다 급여도 많아져 집으로 보내는 돈을 빼고는 수술을 위해 차곡차곡 저축을 했다. 병을 발견한지 1년이 지났다. 더 이상 병을 방치할 수 없어 2월 중순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병을 발견하면서 렛사렌씨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신심있는 불자가 됐다. 이번 일에 큰 도움을 준 캄보디아 린사로 스님이 운영하는 군포이주민센터에 법당 일을 도우며 불교공부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일요일에 법당에 나가 스님 법문을 듣고 캄보디아 친구들과 어울리며 얻는 위안이 정말 큰 휴식이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옷가게를 하며 조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꿈이라는 렛사렌씨의 소원은 그저 건강해지는 것이다.

“수술이 잘 되면 좋겠지만 결과를 담보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부처님 말씀을 떠올리며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고 있어요. 건강해져서 더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 725-7010

군포=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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