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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경수의 ‘불교계에 바란다’ ③ - 1980년 5월 ‘법륜’

기자명 법보신문

사회·인간 위해 존재하는 종교돼야

▲ 서경수
전 동국대 교수
호국불교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음을 반성하고 비판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호국이라 할 때 ‘국’이 지칭하는 대상은 ‘국왕’도 포함되고, ‘국토’나 ‘국민’도 포함될 수 있다. 광범위하게는 ‘국가’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호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것을 지칭했는지 분명치 않다. 국왕·국토·국민·국가 등 전부를 포함한다고 하는 학설도 있으나 신라, 고려, 조선조의 불교사를 훑어보면 호국이 주로 호왕으로 치우친 경향이 짙다.

45년간 중생 교화한 부처님
수행과 더불어 포교 강조해
인류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

그런데 한국불교가 한국의 국왕·국토·국민을 위한다면, 중국불교는 중국국왕과 국토, 국민을 위해서이고, 일본불교가 일본국왕, 국토, 국민을 위한다면, 불교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반목과 전쟁을 조장하는 일이 되어, 평화를 이상으로 하는 승가의 보편성과 어긋난다. 불교는 어느 특징 국가나 민족의 안정과 보전을 위한 종교는 아니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를 벗어난 까닭도, 인도민족만을 위한 브라흐만교와 결별하고 인도라는 제한된 영역을 떠나므로 세계의 종교, 인류의 종교가 된 것이다.

따라서 호국불교에 대한 불교교단으로부터의 반성이나, 비판은, 한번쯤 있어야 했었다고 본다. 전래 초기의 삼국시대나 신라통일시대는 주변의 정치상황이 호국불교적 방향으로 불교 교단이 기울어졌다고 치더라도, 고려불교는 신라나 삼국불교의 호국사상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이 있었더라면 불교와 국가 교단과 왕권 사이의 관계는 교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을까 한다. 승가와 국가 사이에는 엄연히 각자가 굳게 지켜야하고 남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승가와 국가가 서로 뚜렷한 관계를 지켜가면서 공존하고 상호 견제도 하고, 협조도 할 때 승가와 국가의 발전은 조화를 이루며 순조롭게 될 것이다.

셋째로 바라고 싶은 것은 보다 적극적인 불교의 사회참여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사회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나 인간이 종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부처가 중생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중생이 부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다가야의 성도만큼 녹야원의 초전법륜도 그 의의가 크다. 부다가야의 사건은 위대한 성자가 태어난 사건이고, 녹야원의 사건을 부처님과 중생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 따라서 불교라는 종교가 이루어진 사건이다.

성도하여 부처가 된 부처님은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 즉 인류를 위하여 자비의 한 마디를 발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첫 발언을 시작하자 중생과의 대화의 길이 열리고, 대화가 이루어질 때 불교라는 종교가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부처님은 45년 동안 쉬지 않고, 중생이 고통하는 현장을 찾아가 중생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고통의 문제를 풀어 나갔다. 홀로, 깊은 산중에서 명상에만 잠겨있는 부처님은 아니었다. 부처님은 그를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그와 같이 중생제도를 위한 전교의 길을 떠나도록 권유했다.

불교교단, 즉 승가는 오늘이란 역사적 시간과, 오늘이란 사회에 존재하는 특수 집단이다. 승가라는 집단은 나의 이익, 내 가족의 이익, 내 나라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세계에서 인류 전체의 이익을 드높게 제시한다. 나만의 이익을 추구할 때 야기되는 투쟁, 갈등, 전쟁의 비극을 조용히 가르치는 것이 승가의 사명이다. 그래서 인간이 나만을 위한 이기적 이익에 집착할 때 불교는 ‘나’만을 위한다는 ‘나’의 근원이 무엇임을 교시한다. 부처님은 항상 나보다는 남을, 나보다는 사회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종교인이었다.

오늘의 불교는 살아있는 오늘의 사회를 의식하고 그 사회의 현실 문제와 대결하여 그 사회와 함께 사는 데서, 불교가 오늘을 산다는 자각과 사명이 확신된다고 생각한다.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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