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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감기는 돈 들여야 낫는다

기자명 강경구

감기는 공기 질에 따라 낫는 속도가 달라진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특히 중국 발 미세먼지가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우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과도기여서 그런지,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해서 그런지, 별다른 대응이 없어 국민들만 호흡기 질환을 앓고 건강을 잃어가는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미세먼지는 중국이 산업화되면서 미리 예견되었던 현상이다. 공장 매연, 자동차 분진이 그 주범이다. TV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북경은 이미 굴뚝 속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 북경은 대체로 북방이 지세가 높아 서북이던 동북이던 간에 높은 산악지형으로 차단되어 있다. 그 방향으로는 대기 확산이 잘 안되고 남과 동으로만 통풍이 된다. 절반만의 통풍은 매우 불리하다.

미세먼지로 건강 잃는 현대인
건강 상식은 중세시대 머물러
좋은 환경에서 잘 쉬면 회복
오염된 도시에선 통하지 않아

서울에 인구 1000만이 넘게 몰려 산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고도로 도시화되면서 많은 자동차들로 인한 대기 오염과 온실화 현상 때문에 서울 상공은 공기층이 뚜껑모양으로 덮어져 있는 ‘에어 포켓’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연유에서 “서울감기는 돈 들어야 낫는다”라는 유행어가 탄생하게 됐다. 예전에는 푹 쉬거나 공기 좋은 데에 가서 잘 먹고 잘 쉬며 즐겁게 놀면 다 나았다. 돈을 들이지 않고 감기를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서울에서는 이제 돈 들여야 감기가 낫는다.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어떤 때에는 수액제까지 맞아야 낫는다. 나는 이 현상을 ‘서울 거주세’라고 부른다.

감기에 대한 전통적 자가 치료 방식이 전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말로 “감기에 무슨 약 같은 것을 먹느냐? 잘 쉬고 영양분 충분히 공급받으면 되지!”라는 말을 점검해 보자.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감기는 쉬어야 낫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놀지 않는 서울 사람들이다. 말과 생각이 따로 놀고 있다. 그다음 ‘약국에서 약이나 먹고 며칠 두고 보면 된다’는 생각을 검토해 보자. 서울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적용될 수 없다. 우선 서울 공기는 시골, 읍이나 면소재지와 완전히 다르다. 감기는 공기의 질에 따라 낫는 속도에 차이가 난다. 환경이 엄청 오염됐는데 청정구역에서나 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약국 약도 안 먹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감기를 견뎌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런 치료법은 본래 산중에서 특히 수도원이나 절에서 약도 없고 의사도 없던 시절에 민간요법으로서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채식을 주로 하면서 명상과 수행에 몰입하여 살아가던 수도원이나 절의 거주민들에게는 적절한 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저항력을 키워 갔고 형성된 저항력이 그들 체력을 지탱하여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수도, 채식,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 깨끗한 물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 이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지쳐 있는 몸을 전혀 돌보지 않고 알몸으로 이겨내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운동도 안한 중학생이 격투기 챔피언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꼴이다. 보나마나 죽을 정도고 얻어맞고 케이오 당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고 말 것이다.

중세 시대 이래로 한국 사회는 ‘의사도 약도 없으며 공기는 청량하고 온 나라가 열심히 도덕만 닦고 살아간다’를 건강 상식의 근본 전제로 삼고 있다. 옛 시절에 만들어진 건강수칙이 현대 서울에서 아직도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건강을 수호하는 의사로서 21세기 서울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감기 수칙을 제안한다. 첫째 감기 걸리면 바로 병원으로 간다. 둘째 약국을 들리는 것은 시간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몸에게 낭비다. 셋째 우리가 공기 질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역시 서울 감기는 돈 들여야 낫는다.

강경구 의학박사·열린서울내과의원 원장 sudongzu@daum.net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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